내가 설계하고 내가 짓는 것이다

ASK

건축주에게 묻다 Q 집을 짓는다는 것은? 

 

 

|부부


“  내가 설계하고 내가 짓는 것이다  ”

“  우리가 살 집을 짓는 것이고,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

 

|딸

 

“  집을 짓는 동안 부모님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많이 고민하고 바쁘셨지만, 행복해 하셨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

 

‘건축주는 어떤 마음으로 집을 지을까? 기자는 최근 자신의 집을 지은 건축주를 만나 물었습니다.'  [건축주에게 묻다].
이 코너는 건축주의 입장에서 느낀 건축 이야기입니다. (아래 서술된 모든 내용은 건축주의 동의하에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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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는 전주시 만성동에 입주한 건축주입니다. 이 집에는 저희 부부와 두 자녀,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남편의 사업상 중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있었으며, 저는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Q  지금의 주택에 입주하기 전에 어디에 사셨나요?

 

 국내에서도 중국에서도 아파트에 거주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골조만 있는 상태에서 구조나 인테리어를 입주자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아파트는 정해진 구조와 인테리어를 거의 손댈 수 없고, 인테리어를 바꾸게 되면 엄청남 자원의 낭비와 더불어 환경파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어 속상했습니다.

 

 

Q  지금의 주택으로 이전을 계획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파트 옥탑이 있는 20층 아파트에 입주 한지 한 달 만에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요일마다 같은 방송이 제가 사는 공간을 채웠습니다. ‘아래층을 배려해서 뛰지 마라’, ‘늦은 시간 피아노 치지 마라’, ‘이른 시간부터 세탁기 돌리지 마라’, ‘계단에서 담배 피우지 마라’ 등, 내가 내 집에서 살면서 이웃집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고, 내 가족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아파트는 내가 평생 살 집은 못 되는구나!’라고 판단하고 바로 주택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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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철근콘크리트조 주택으로 결정을 하셨나요?

 

 고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아파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붉은 벽돌에 살았고요. 그 집들이 너무 안 예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 주택을 지워나갔습니다. 조립식, 철골, 목조 아니면 철근콘크리트? 
 

 벽돌 스타코 등은 그저 평범해 보였고, 노출 콘크리트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깊은 고민 없이 철근콘크리트 주택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Q   집을 짓기 전 어떤 준비과정이 있었나요?

 

 이곳의 토지를 매입한 것은 다운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대지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건축사가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초등학교 친구가 건축사로 있어서 상담을 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했고 꼼꼼한 성격에 작은 집을 전문으로 설계하고 있어 맡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주하여 살면서 삶의 방식이나 관리상의 문제로 이웃과 싸우는 일이 없도록 주택을 계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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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건축 진행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구 건축사는 지인의 집은 짓지 않는다며 다른 건축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소개받은 소장님의 설계 방식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설계를 하면서 즐거웠습니다. 3D 모형을 만들어 주는 등 많은 노력은 해 주셨지만, 더 자주 많이 만났으면 더 좋은 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바로 단톡방을 개설하고 건축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의견과 과정을 공유하였습니다. 마치 저희가 공사 현장에 있었던 것 같이 되어 진 일과 앞으로 할 일들이 사진과 설명으로 자세하게 올라왔습니다. 너무나 자세한 두툼한 내역서를 받았습니다. 사실 일반 건축주에게는 너무나 상세한 그 내용들을 다 이해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이었습니다. 


 시공이 진행되면서 ‘옥에 티’를 찾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시공사에서 너무 잘해 주니까 잘해 주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약소한 내용은 반드시 지켜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공 스케쥴이 너무 정확하게 맞아 신기했거든요. 예상치 못하게 일을 너무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실수를 하지 않나? 하는 ‘옥에 티’를 찾듯 일정표를 꼼꼼히 확인하며 기록하는 재미가 생긴 것입니다. (웃음) 이번 장마와 태풍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없는 공백 시간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시공팀의 일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작업 순서가 조정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1달 지연되어 잘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Q   어떤 방식으로 집을 지으셨나요?

 

 건축사사무소에서 저희에게 설계부터 시공, 인테리어까지 적극 참여하고 함께 결정하기를 권했습니다. 
저희는 건축사와 시공사를 신뢰하고 맡겼습니다.

 

 

Q   건축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느낌을 말씀해 주세요

 

 상담을 하면서 저의 바람들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집 거실에서 마당에 핀 ‘능소화를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당 한구석에 작은 붉은 구조물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그게 뭐 냐고?’하니까, ‘1~2년 후면 이 구조물을 타고 피어있는 능소화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붉은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좋아하시는 색상으로 도장을 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능소화의 특성까지 공부해서 이런 구조물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출 콘크리트가 가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현관 입구가 루버로 설치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이 집 구석구석에 가득합니다. 제가 던진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듣고 다 반영하려고 애써 주셔서 집 짓는 것이 즐거움이 넘어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주변 주택을 지었던 분들의 평가도 기억이 납니다. 저희보다 이 집 구석구석을 더 들여다 보시면서 ‘이런 현장 소장, 이런 시공팀 처음 봤다. 이런 사람들 만나기 힘들다.’라며 칭찬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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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집을 짓겠다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계와 시공을 함께 하는 곳에 의뢰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입주 후에 책임 소지를 두고 분쟁이 있을 수 있고, 설계와 시공의 이견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고객 마인드에서 일하는 회사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건축주는 집 짓는 전 과정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수준까지 설명하고 이해시키며 알려주는 회사와 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집을 지어 준 시공사는 너무 많이 질문했는데, 주관식이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웃음) 객관식으로 물어보고 그에 따른 예시를 많이 들어 주었으면 좀 더 쉬웠었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인테리어나 익스테리어 부분에서요. 그러나 총평은 만족입니다. 

 

 

Q   집을 짓는다는 것을 정의한다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내가 설계하고 내가 짓는 것입니다.’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이 살 집이고 우리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은 그분들의 전문 기술을 제공하여 도운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말씀드렸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고요.


 딸| ‘부모님께서 집을 짓기 위해 많은 고민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매우 바쁜 1년을 보내셨거든요.
그런데 좋았습니다. 그 1년 동안 행복해하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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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시 집을 짓게 된다면, 지금과 어떤 내용이 다를까요?

 

 나이가 들면 계단 있는 집이 불편하니까 1층 집을 짓겠다는 등, 20년 후에 저희의 모습을 예측하고 지은 집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저희가 살 집을 지은 것입니다. 만약 다시 집을 짓게 된다면 그때 상황에 맞는 집을 지을 것입니다.

 

 

 

| 익스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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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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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노트

단독주택 부동재(不同齋)’ 

설계. 건축사사무소예감
시공. 그리 크지 않은 집

 

 

라북도 전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부동재’는 연면적 177.13㎡(약 53.58평), 지상 2층 규모의 단독주택으로 단란한 네 식구를 위한 공간이다. ‘집’이란 곳은 그 장소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이다. 집이란 장소에 건축주 가족의 취향과 삶이 묻어나고 한 켜 한 켜 소중한 추억들을 쌓아갈 수 있는 행복한 안식처를 만들고자 하였다.


 ‘부동재(不同齋)’라는 집 명칭은 남들과 같지 않게 라는 뜻으로 건축주 삶의 모토이자 우리 가족의 삶을 담은, 남들과는 같지 않은 집이 되길 바라는 의미이다.


 대지는 두 개의 도로에 접해있고 사다리꼴 형태를 띠는데, 서쪽으로 수변공원과 산책로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주택은 조망과 향을 고려하여 배치 계획되었는데, 인접 대지의 막혀있는 뷰를 피해 정남향으로 배치하여 빛을 한껏 끌어들일 수 있었고, 서쪽의 수변공원 조망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 배치는 북쪽 가까이하여 남서쪽에 마당과 텃밭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확보하였다. 조경 또한 주택의 특징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곳과 차폐기능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하여 계획되었다.


 실 구성을 살펴보면, 1층은 손님 및 공용 공간, 2층은 가족을 위한 개인 공간으로 구분된다. 많은 양의 일사취득을 위해 주사용 공간은 주로 남측에, 그 외 공간은 북측에 두고, 코어 공간들은 인접 시켜 동측에 배치했다.


 1층은 현관 가까이에 화장실 앞 세면대, 계단실을 두어 생활 동선이 편리하도록 계획하였다. 주방과 거실은 한 공간으로 두어 넓게 활용하도록 하였고, 주방 창문과 거실 창문을 한 축에 마주 보게 배치하여 맞통풍이 잘되도록 하였다. 다용도실은 주방과 연계하여 인접시켰고, 여기에 테라스로 통하는 문을 두어 텃밭으로 나가는 동선과 가사일의 편의성을 높였다. 테라스는 두 개의 폴딩도어를 두어 이용목적에 따라 가변 가능하도록 계획하였는데, 문을 전체 오픈하여 데크를 넓게 이용하거나, 손님이 왔을 경우 모임 공간으로 문을 닫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동측에 위치한 계단실은 유리창 대신 복층 폴리카보네이트를 마감재로 사용하였다. 주택 전면부에 노출이 많고 차도와 공원으로 내려가는 인도가 접한 곳에 위치해있어 유동인구로부터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일사확보를 위한 것이다. 폴리카보네이트를 통한 밝은 빛의 유입은 계단실 전체를 밝혀주어 1층까지 연결되고, 야간에는 내부 조명이 은은하게 비춰 외부를 밝혀준다.


 2층은 주생활 공간으로 작업실, 안방, 방, 드레스룸, 파우더룸, 화장실, 수납 실, 발코니로 구성된다. 계단실을 따라 좁은 복도를 지나면 박공 천정의 높은 천정고를 그대로 살린 작업실 공간이 나타난다. 이 공간은 가족의 서재 겸 거실이자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곳이며, 옆의 방은 폴딩도어를 두어 가변형으로 활용할 수 있게 계획하였다. 


 일사를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해 남측에 넓은 창과 고창을 두어 밝은 분위기의 공간이 되도록 연출하였다. 안방과 파우더룸 사이에 있는 드레스룸은 양쪽에 문을 두었는데, 순환 동선이 되게 하여 화장실로 가는 곳까지 동선의 편의성을 높였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2층의 발코니는 안방의 코너창과 더불어 탁 트인 수변공원의 조망을 집 안으로 한껏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벽면과 천정을 적삼목 루바로 마감하여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서향의 노을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이 되게 하였다.


 부동재의 입면은 사방이 모두 다른 형태를 띤다. 남측 정면은 많은 양의 일사취득을 고려하여 넓은 창들을 내었고, 1층 일부분에 건축주의 취향을 반영한 노출콘크리트 미장 마감을 하여 매스 분리를 하였다. 배면은 북측에 인접한 도로와의 관계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요철 부분 없이 한 면으로 계획하고, 필요한 곳에만 크기가 다른 정사각창을 내어 포인트가 되게 하였다. 폴리카보네이트 마감을 사용하여 빛의 유입과 깔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우측면과, 서향 공원 조망을 살리면서 상징적인 형태를 띠는 좌측면은 이 주택 입면의 가장 큰 특징이다.


 건축주 가족의 일상, 취향, 삶이 고스란히 담긴 ‘부동재’는 향에 따른 최적의 배치 계획과 기능적인 측면을 살린 공간 계획이 결합하여 집 명칭 의미를 살린, 건축주 가족을 위한 유일한 집 ‘不同齋’가 되었다.

 

 

l 취재 김창규 기자  /  사진작가 함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