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상상 속의 공간을 그려내다.

‘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상상 속의 공간을 그려내다.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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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우리가 직접 가보지 못하는 세상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
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그 세상을 만들어내는 소설가의 역량에 달려 있겠지요. 공간은 소설가뿐만 아니라 독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더욱 각색됩니다. ‘집들이 만리장성처럼 기다.

 

이랗게 나열되어 있었다.’라는 문장이 있다면 독자들이 상상한 세상은 제각기 다를 겁니다.
만리장성을 모르고 있는 사람, 사진으로 본 사람, 직접 가본 사람으로 나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
는 만리장성 만한 길이는 어느 정도인지, 높이는 정말 성벽의 높이만큼 높은지 등 정말 다양한 부분에
서 소설 속 공간은 무궁무진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을 겁니다.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은 후회만이 남아 힘들고 지친 삶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그리
고 결국 그 방법의 일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죽은 줄 알았지만 눈을 떠보니 그
곳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작품은 도서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작은 슈퍼마켓 크기의 건물이었다. 석조로 된 건물 앞면은 같은 색으로 중앙에 큼직한 나무문이 달렸으며, 섬세한 장식의 지붕은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려는 포부가 엿보였다. 앞쪽 박공에는 위엄 있는 시계가 걸렸는데 검은색 로마 숫자가 적혔고, 두 바늘은 자정을 가리켰다. 앞쪽 벽에는 가장자리에 벽돌을 두른, 긴 아치형의 불 꺼진 창문들이 똑 같은 간격으로 뚫려 있었다. 노라가 처음에 봤을 때는 네 개였는데 잠시 뒤에 다시 보니 틀림없이 다섯 개였다. 잘못 센 모양이었다.
이 건물을 제외하고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고, 딱히 갈 데도 없었으므로 노라는 조심스럽게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슈퍼마켓 크기라고 한다면 제 머릿속에서는 ‘상회’라고 적혀 있는 작은 슈퍼가 생각납니다. 건물은 석조로 되어 있고 작은 크기와 대비되는 큼직한 나무문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인형의 집을 보고 있는 것처럼 작고 섬세한 장식물들이 지붕을 꾸미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귀엽게 보여 질 것 같은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이 어른을 흉내 내는 듯 ‘웅장함’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작품은
도서관의 내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가는 정말로 끝없이 이어진 듯했다. 미술 시간에 배웠던 1점 투시도법을 나타낸 선처럼 저 먼 지평선을 향해 곧고 길게 뻗어 있었고, 가끔씩 복도가 등장할 때만 끊어졌다.
노라는 아무 복도나 선택해 걸었다. 방향을 바꿀 기회가 오자 왼쪽으로 꺾었다가 잠시 길을 잃었다. 나가는 길을 찾았지만 출구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입구로 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마침내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달리 갈 곳이 없어 일단 도서관으로 들어갔지만 겉에서 봤던 작은 슈퍼마켓 같은 도서관은 어디로 걸어도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기나긴 서가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읽으며 작은 공간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답답함이 아닌 넓은 공간이 느끼게 해주는 공포감을 체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밖이 보이지 않는 높은 서가의 둘레에서 아무리 걸어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도서관
이 아무리 넓다고 할지라도 그곳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런 도서관은 좋은 도서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책을 아무리 좋아하는 저에게 있어서도 이 공간은 고문에 가깝다고 느껴질 듯합니다. 밖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창문, 언제든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을 들게 해주는 문,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공간감 등의 요소들이 제외된 소설 속 도서관은 주인공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하고 이 도서관 앞에서 눈을 뜹니다. 겉은 작지만 웅장함을 뿜어내려고 노력하는 도서관의 모습은 작중의 주인공이 살아오고 있던 모습과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끝없이 이어지는 서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소설 속 도서관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그 공간에 대한 설명을 읽음과 동시에 주인공 상황과 사건의 흐름은 마음속에 쉽게 다가오게 됩니다. 공간을 글로 그린다는 행위를 다르게 본다면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런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독자에게 설명하는 소설가의 역량과 글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충분히 상상할 줄 아는 독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집을 짓기 위해 설명해야 하는 업계의 사람과 집을 짓고 싶어 하는 평범한 건축주 간의 대화와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