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라! 이 집은 철근콘크리트 주택 아닌가요?
김정희 BSI 건축과학연구소장
전직 빌더 출신으로 빌딩 사이언스 탐구에 뜻을 두고 2016년 BSI건축과학연구소를 설립한 후, 주택하자 문제 연구와 주택 검사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홈인스펙터다.
글·사진제공_ BSI 건축과학연구소 김정희 소장
새로 구입했다는 주택에 대한 검사 요청을 받았다. 검사 전 준비를 위해 설계도면과 주택 사진, 문제가 되는 부분 등에 대한 자료를 먼저 받아 보았다. 주택 사진을 본 후 설계도면을 보고 놀랐다. 사진으로 볼 땐 전형적인 모던 스타일 철근콘크리트 주택이었는데, 설계도면에는 목조로 된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누가 봐도 목조라기보다는 철콘 건물 형태인데... 당일 검사 현장에 나가서 직접 실물을 봐도 목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철콘 건물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전형적인 박스형 철콘 주택스타일이었다.
주택의 디자인이 하자문제 원인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얘기가 있다.
보는 순간 바로 누수가 걱정되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비닐을 쳐 놓은 곳이 있다. 누수 문제로 주택검사 의뢰를 했다고 한다. 지은 지 6년 된 건물인데 매입할 땐 욕실 누수 문제만 얘길 했는데 막상 장마 비에 베란다 부분에서도 물이 새는 증상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집은 사전에 주택검사를 받고 사야만 하는데 정말 아쉽다. 구입 전에 검사 했다면 아마도 다른 결정을 했거나 아니면 수리비와 유지관리관련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을 것이다. 취약 부분, 손 볼 곳들이 많은 형태의 주택이다.
주택 빗물 관리의 기본원칙을 다시 살펴보자면
주택의 하자문제 중 가장 많은 것이 물과 관련된 문제이고, 그중 가장 큰 부분이 빗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다. 건축물에서 물 관리의 3대 요소는 물의 근원, 물의 이동경로, 그리고 물을 움직이는 힘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만 없애도 되나 현실에선 세 가지 모두를 통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인간에겐 실수라는 인생 친구가 늘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빗물 같은 경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자연 현상이기 때문에 소스를 없애는 방식은 사용할 수 없다. 대신에 빗물이 움직이는 힘을 이용해서 물이 이동하는 경로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주로 대비를 한다. 세계 공통적인 방식이다. 쉽게 말해 경사면과 후레싱 등을 이용해서 물이 실내 쪽이 아니라 집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주로 활용을 한다는 것이다. 가장 간편하면서도 효과가 크고 내구성이 좋은 방식이다. 그래서 비가 많은 지역에 지어지는 집들은 대개 아래와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었고,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빗물을 관리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전통적인 관리 방법에서 특히 경사지붕과 긴 처마는 아래 벽체 부분을 비에 젖지 않게 만들어서 습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해왔다. 지붕처마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의 벽체에 생기는 하자문제에 대한 아래의 통계 자료를 보면 지붕 처마의 효과를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처마가 없는 박스형 건물의 경우
비에 노출이 되면
보통 박스 형태로 생긴 상업용 건물들은 주택과 같은 모양의 지붕처마를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상업용 건물들이 비에 어떤 식으로 젖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들을 보면 비슷한 모양을 가진 처마 없는 주택들이 어떻게 젖을지를 알 수가 있다.
관련되는 연구 자료에 나온 상업용 건물이 젖는 과정에 대한 그림이다. 이걸 보면 박스형 건물은 지붕과 벽체가 만나는 모서리 부분부터 젖기 시작하고 또 가장 많이 젖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빗물의 누수 방지를 위해서 가장 신경을 써야만 할 부분은 벽과 지붕이 만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상업용 건물들은 벽과 지붕이 만나는 부분의 시공에 매우 신중할 수밖엔 없다. 시공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시공 디테일 도면들도 상세하다. 보통 아래와 같은 식의 시공 도면이 함께 제공되고 준수되도록 체크가 된다. 그러니까 적어도 주택의 모양이 철콘 빌딩처럼 박스형이 되려면 이런 취약 부분에 대한 시공이 섬세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처음 그 집은 그렇게 시공을 했을까?
비만 오면 지붕에 올라갔다는
이웃들의 얘기가 있는 것을 보니...
검사 주택을 처음 지었던 전 주인은 자신이 원하는 주택 디자인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목조주택을 선택 했을까? 차라리 철콘 방식을 선택했다면 누수 하자문제가 많지 않았을 텐데... 이 말은 철콘 주택이 목조주택보다 누수 하자가 적다는 얘기가 아니라 형태에 따라서 좀 더 시공하기 편한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시공이 편하면 하자는 적게 발생을 한다. 하자의 많은 부분이 시공과정 중에 발생하는 실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주는 목조주택으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집을 팔아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웃들의 얘길 들으니 비만 오면 지붕에 올라가서 뭔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올라가 봤다. 도대체 지붕에 올라가서 뭘 하셨나?
놀랍게도 이런 일을 하셨다. 청테이프의 새로운 사용법을 실험한 것으로 보인다. 누수방지용 청테이프! 지붕이 온통 땜방 자국 천지이다. 아스팔트 슁글에 방수액도 발라본 것 같고, 실리콘도 종류별로 사용해 본 것 같고, 거기에 청테이프까지 사용을 했다. 아마도 집 한번 잘못 지었다가 별일 다 해 본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정도 상황이면 아마도 시공사와도 꽤나 시끄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남다른 디자인을 원한다면
그에 걸 맞는 시공 디테일도 갖춰야만
디자인에서 독특함을 추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거야 원래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부분인지라 당연히 그럴 수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독특함에는 그에 걸 맞는 섬세한 시공도 반드시 함께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섬세한 시공이란 다름 아닌 건물의 물 관리의 기본 원칙에 맞는 시공이다. 즉 물이 이동하는 힘과 경로에 적합한 형태를 만들어 주어서 물이 실내 쪽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해 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형태가 아니라 실리콘 같은 재료로 대체를 하는 순간 하자 문제는 이미 발생 예고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의 힘을 이기는 건축 재료는 없다. 실리콘과 같은 재료는 지붕 같은 곳에 노출되어 사용되면 2~3년 버티기도 힘들다. 이 집 지붕의 숱한 땜방 자국이 그런 사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무리 때우고 덧칠을 해본들 지붕에 물이 고이는 곳이 있으면 그 아래쪽으로는 물이 새기가 쉽다. 이 지붕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샌다. 확 뜯어 근본적인 부분으로 고치지 않으면 해결이 난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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