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Buildings Don’t Lie

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라, 2바이6 구조재에 보이는 이 까만 점들의 정체는 뭐지?

 

얼마 전에 잠시 들렀던 건축현장이 있었다. 골조 시공 상태를 둘러보고 있는데 이상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만화 속 주근깨가 잔뜩 난 개구쟁이 소년의 얼굴처럼 스터드 두어 개에 왠 까만 점들이 잔뜩 나 있다. 처음엔 먹물자국인가 했다. 좀 이상하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게 아니다. 벌레가 파먹은 자국이다. 한두 곳도 아니고 나무 전체가 다 그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나무가 판매되는 구조재 번들에 그대로 섞여 있었을까? 요즘 자재사정이 안 좋다고 하더니 북미산 수입나무들의 품질이 더 떨어진 모양이다. 품질관리가 제대로 안된 것 같다.


나무의 잘린 단면을 보니 확실하게 티가 난다. 벌레들이 파고 들어간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벌레에 감염된 병든 나무이다. 이런 나무를 골조에 쓰다니? 좀 빌더가 무신경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본인도 그런 나무를 사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듯 ‘아무래도 안 되겠죠?’하고 다시 분해를 한다. 자세히 둘러보니 두어 곳 정도에 그런 나무가 쓰였다. 다 제거하고 다른 나무로 대체를 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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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재를 파먹은 녀석들의 정체는 바로 나무구멍 풍뎅이의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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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장의 빌더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일을 벌인 녀석들을 잘 안다. 바로 나무를 파먹는 풍뎅이 애벌래들이다. 여러 종류가 있고, 생긴 것들이 대부분 비슷하다. 곤충 전문가들은 아주 다르게 생겼다고 얘길 하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다 그 녀석이 그 녀석이다. 대표적인 녀석이 아래 사진처럼 생겼다. 큰 풍뎅이가 아니라 작은 풍뎅이 종류이다. 나무구멍 풍뎅이(wood-boring beetles)라고 불리는데 성충의 크기가 3~4밀리미터 밖에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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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뎅이 성충이 나무를 파먹는 것이 아니라 풍뎅이로 변신하기 전의 애벌레 상태에서 나무를 파먹는다. 그러니까 이 성충들이 나무껍질 부분에 알을 낳아 놓으면 그 알들이 부화한 애벌레들이 나무를 파먹으면서 성장을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가 어떻게 무지막지하게 생긴 벌레이기에 그 딱딱한 나무를 파먹으면서 구멍을 뚫고 들어갈 수가 있을까? 한 마디로 벌레 죠스처럼 생겼다. 딱딱한 입부분만 엄청 큰 가분수형의 벌레이다.

 

벽에서 나무 파먹는 소리가 나요! 믿지 못하겠지만 실제 상황

 

처음 주택검사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이런 상담전화가 있었다. 새로 지은 목조주택에 사는 분이라고 했다. 벽체 속에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처음엔 흔하게 생기는 나무의 수축 팽창으로 인한 소리를 얘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아니란다. 뭔가 자꾸 나무를 파먹은 소리, 갉아먹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목조주택 건축에 주로 쓰이는 구조재들은 대부분이 가열해서 건조시킨 나무들을 수입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벌레들은 다 죽는다고 얘길 해 드렸다. 아마도 다른 소릴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뭔가 나무를 파먹는 듯 한 소리이다. 조용할 때 귀 기울이면 들리는데 바각바각 소리가 선명하다. 그때 그 상담 전화가 생각이 났다. 진짜로 벌레들이 나무를 파먹나?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며칠을 소리가 날 때마다 귀 기울이다가 어딘지 찾아냈다.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집 지을 때 남은 구조재로 만든 의자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래서 의자를 하나하나 분해를 하면서 살펴봤다. 벌레와 관련된 아무 흔적도 안 보인다. 다 분해를 했는데도 없다. 희안하다. 낙담하고 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나무껍질이 붙어 있는 부분이었다. 설마하고 끌로 껍질을 살짝 떼어내 봤다. 찾았다! 껍질 안쪽에 애벌레가 무려 두 마리나 들어 있었다. 그 놈들이 껍질 속의 나무 부분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속껍질 부분들을 먼저 넓게 파먹으면서 슬슬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도 수입산 구조재에 붙어서 오는 벌레나 알들이, 특히 속껍질 부분에 들어있는 풍뎅이의 알들이 다 죽는 것이 아니고 일부는 깨어나서 활동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 의자를 파먹은 애벌레들의 모습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니 저런 식으로 나무의 속껍질 부분을 파먹는 풍뎅이는 껍질 풍뎅이(bark beetles)라고 한다. 북미지역의 숲들이 대부분 저 종류나 다른 종류의 풍뎅이들의 서식지라고 하고, 더 놀라운 것은 저 녀석들이 애벌레 상태에서 보통 3년 이상을 산다는 것이다. 이건 뭐 껍질 속에 알 상태로 있으니 훈증소독을 한다고 해서 없어질 상황도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속껍질 부분에 알을 낳기 때문에 껍질이 붙은 나무를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고, 굳이 사용을 해야만 하다면 껍질은 벗겨내고 사용을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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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 쪼그마한 벌레 좀 있으면 어때?’ 하는 담대한 마음을 가진 시공업자나 빌더들도 있을 것이다. 작은 소리쯤은 신경 끄고 살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아래 사진을 보고 부디 마음을 돌리시길 바란다. 이 사례는 그렇게 벽체 속으로 들어간 벌레의 알들과 습기 문제가 결합되면 만들어내는 놀라운 안 좋은 쪽으로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준다.


지은 지 10년 된 목조주택의 벽체 속 OSB와 구조재가 전부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푸석푸석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루가 되었다. 나무껍질 속에 들어있던 알에서 부화된 벌레들이 살기 좋은 축축한 환경 조건이 조성되자 대거 번식을 한 것이다. 나무들을 먹어치우면서 가루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무를 가루를 만드는 벌레는 파우더포스트 비틀이라는 종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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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파먹는 벌레가 꼭 수입산 벌레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먹는 벌레는 목조주택에 사용되는 구조재를 파먹는 외래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도 나무를 파먹는 벌레 종류들이 있다. 특히, 심한 것이 하늘소 종류의 유충들이다. 예전에 국내산
소나무를 써서 지은 통나무집을 한번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멋진 집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기둥과 보 등에 지름이 약 1센티쯤 되는 구멍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 있었다. 처음에 누가 드릴로 구멍을 뚫었나 싶었다. 딱 그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어보니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건축주가 집 지으려고 소나무를 사서 껍질도 안 벗기고 부지에 3년을 쌓아두었다고 했다. 나무는 한 3년은 말려야 한다는 얘길 어디서 들었던 것 같다. 덕분에 늘 축축한 껍질로 덮여있는 그 소나무더미는 하늘소와 풍뎅이들의 자연적인 번식장이 되어 버렸단다. 알들을 잔뜩 낳아 놓아서 부화한 애벌레들이 나무에 그렇게나 많은 구멍을 뚫어 놓았다는 것이다. 나무는 건조시키려면 껍질을 벗겨서 바람이 잘 통하게 해 놓고 건조를 시켜야만 한다. 그런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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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파먹은 벌레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

 

벌레들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려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점에 주의를 해야만 한다. 하나는 벌레 알이 있는 목재가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만한다. 이를 위해선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있는 나무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가능하면 나무에 붙어있는 껍질은 전부 벗겨내고 사용을 해야만 한다. 풍뎅이와 같은 벌레들은 나무의 속껍질 부분에 알을 낳기 때문에 나무껍질은 겉 부분뿐만 아니라 속껍질까지도 벗겨내야만 한다. 어떤 분은 껍질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껍질도 안 벗기거나, 일부를 남겨놓기도 하는데 그러면 벌레문제가 생기기 쉽다. 나무껍질은 속껍질까지도 전부 깨끗하게 벗겨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하나는 나무가 습한 상태에 있지 않도록 하고 건조가 빨리 잘 되도록 해 주어야만 한다. 보통 집 지을 때 사용하는 구조재의 함수율은 19%이하로 되어 있다. 하지만, 함수율의 허용오차는 상당히 크기 때문에 20%가 훌쩍 넘는 나무들도 많다. 나무에 습기가 많으면 벌레들이 번식하기가 더 좋아진다. 벌레 중엔 나무뿐만 아니라 나무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와 버섯류도 먹이로 삼는 녀석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가 잘 건조가 되면 벌레들에겐 서식조건이 나빠진다. 보통 집 지은 후 나무들은 급격히 건조되기 시작해 실내 쪽의 나무들은 11~13% 수준까지 건조가 된다. 나무가 건조되면 곰팡이 문제도 없을뿐더러 나무의 재질 자체가 더 딱딱해진다. 그렇게 되면 벌레들이 서식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습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곧 벌레들로 인한 문제를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다른 방법은 약품처리를 하는 것이다. 구입한 나무를 공장에서처럼 훈증처리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벌레가 서식할 만한 조건이 되는 부분에는 붕산가루를 뿌려두거나 붕산을 물에 타 살포해 놓으면 벌레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 붕산은 벌레들에게는 해롭지만 사람에게는 무해한 물질이다. 약국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붕산은 또 곰팡이와 버섯들이 나무에 자라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어서 벌레들이 먹을
것을 없애는 작용도 한다. 살충제를 뿌리는 것도 효과는 있겠지만 살충제는 사람에게도 해롭기 때문에 나로선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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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쪽의 건축자료에 보면 집지을 때 벽체의 하단부에 흰개미 등의 예방을 위해 약품처리를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약품들이 대부분 붕산으로 만들어지는 붕산염들을 사용하는 제품들이다. 사람과 애완동물들엔 해가 없지만 흰개미와 같은 해충들과 곰팡이들에겐 독이 되는 성분이다.

 


bdl_8.JPG   BSI 건축과학연구소 김정희 소장

전직 빌더 출신으로 빌딩 사이언스 탐구에 뜻을 두고 2016년 BSI건축과학연구소를 설립한 후,
주택하자 문제 연구와 주택 검사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홈인스펙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