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을 통해 첫 문장의 의미와 세심함의 중요성을 배우다.

‘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츠바키 문구점>을 통해
첫 문장의 의미와 세심함의 중요성을 배우다.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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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높은 문턱을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아직 너무 어려 양쪽 다리로만 문턱을 넘어가기에는 힘들었던저는 팔다리를 모두 이용해 힘겹게 넘나 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처음엔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어느샌가 그 공간을 밟을 때마다 문턱 너머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미소가 먼저 생각나 행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집이 지금의 시골책방 오월의푸른하늘이 되었고 저는 매일 그 추억들과 함께 손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추억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공유의 배경에는 공간이 존
재하고 얼마나 공간에 대한 묘사가 뚜렷한가에 따라서 추억은 그 생생함의 정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잊
혀 가는 추억들 사이에서 끄집어 낸 공간에 대한 기억들은 비록 그것이 타인의 것일지라도 우리를 하나
로 만들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우리는 느낄 것입니다. 형성된 공감대는 공간에 대한 첫인상을 의도대로 이끌기에 적합하고 나아가 몰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나는 나지막한 산자락에 자리한 아담한 단층집에 살고 있다. 주소는 가나가와 현 가마쿠라 시다. 가마쿠라라고 해도 산 쪽이어서 바다와는 꽤 떨어져 있다.


전에는 선대와 살았지만, 삼 년 전에 선대가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오래된 일본 가옥에서 혼자 산다. 하지만 언제나 주위에 사람 기운이 느껴져서 그리 외롭진 않다. 밤에는 고스트 타운 같은 적막함에 둘러싸이는 이 일대도, 아침이 되면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나면 먼저 주전자에 물을 받아 끓이는 것이 아침 일과다. 물이 끓는 동안 빗자루로 마루를 쓸고 걸레질을 한다. 부엌 툇마루, 사랑방, 계단 순으로 청소한다.」


세계적인 명작 <톰 소여의 모험>의 첫 문장은 “톰!”이라고 부르는 목소리와 「대답이 없었다.」라는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시작합니다. ‘톰’이라는 인물이 작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있기에 이 첫 문장은 읽는 이를 하여금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위의 적힌 글은 <츠바키 문구점>이라는 소설의 첫 부분입니다. 제목부터 ‘문구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과 같이 이 작품은 집과 마을에 대
한 묘사로 시작되기에 이 공간이 작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아담한 단층집을 머릿속에 그려봅시다. 가마쿠라는 일본의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보통은 바다가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하지만 그곳과는 거리가 먼 산동네이다 보니 산자락에서 멀리 내다봐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동네가 떠오릅니다. 한국으로 보자면 부산이라고 해서 다 바다가 보이는 것은 아닌 것처럼 부산인데 산 쪽에 가깝고 바다내음조차 안 나는 마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선대’라는 단어를 통해 이 공간이 내가 처음 만들어낸 곳이 아닌 대를 이어받아온, 추억이 스며든 공간임을 느끼게 합니다. 단층집은 ‘오래된 일본 가옥’이라는 단어를 더해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변하고 새것이 아닌 사람의 때가 묻은 고풍스러운 색감의 나무가 집안을 가득메우고 있을 듯합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듯한 산동네지만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인정이 남아 외로움 보다는 포근함이 전
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주인공은 매일 아침 정해진 순서대로 청소를 하면서 선대가 남긴 집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사실 <츠바키 문구점>은 ‘대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들이 주인공을 찾아오는 이야기입니다. 감정을 전할 때, 글씨체와 단어 하나의 차이로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톰 소여를 부르는 목소리로 하나로 톰의 성격을 알 수 있듯 이 작품 속 가장 중요한 첫 부분에 주인공의 삶의 터전을 설명하면서 선대부터 이어져 온 세밀한 정성들이 녹아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편지를 하나 적더라도 글씨체, 필기구, 종이, 인사말까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적는 것처럼 작은 부분 하나에도 추억을 살리고 생생한 감정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면서 저 또한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힘껏 올라섰던 그 문턱을 잊지 않고 머릿속에 오래 간직하고 가꿔 나가고 싶습니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