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서점 일기>에서
공간을 채우는 심볼의 의미를 찾다.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제가 책방을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한 계기로 여주의 ‘여백서원’을 들린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독일문학 번역으로 유명하신 전영애 교수님께서 주거하시며 자신이 읽어 오신 책들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완성된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외국인을 위한 집, 아이들을 위한 집 등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나 서원의 풍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이 많은 집은 공간에 진입함과 동시에 특유의 책 냄새가 콧등사이를 스칩니다. 누군가에게는 불
쾌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그 독특한 퀴퀴함은 애독가들에게 있어서 진한 커피향과 같은 감동을 선사
해줍니다. 제가 처음 여백서원의 문을 두드린 그 날, 전 그 공간이, 정말 문자를 사랑하고, 종이를 사랑하
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드나드는 곳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여백서원의 곳곳은
교수님과 평생을 함께한 책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작은 중고서점의 책방지기가 남긴 365일간의 일기를 담은 <서점 일기>라는 책입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자신이 생각하는 책에 대한 생각들이 매일매일 차곡차곡 적혀져 있는 일기장을 엿본다고 생각하시면 쉽고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모든 내용이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내용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말하는 내용을 통해 공간을 결정하는 것에는 전체적인 형태를 넘어 ‘심볼(symbol)’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축축한 트위드 모자를 쓴 반백의 농부가, 노부부가 살던 농장 집으로 우리를 다시 안내했다. 기억하던 것보다 더 음산하고 지저분했다.
애나와 나는 책을 상자에 담아 승합차로 옮겨 실었다. 외로운 고양이는 우리가 지나칠 때마다 목이 칼칼하게 잠긴 듯한 ‘야옹’ 소리를 내뱉고, 소 떼가 등에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젖은 들판을 바라보는 동작을 반복했다. 아주 오랫동안 한자리에 있었던 책들을 치우면 늘 그렇듯, 수거 작업을 다 마치고 난 우리는 먼지와 고양이 털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중략) 이렇게 고인의 장서를 처분하는 일은 어쩌면 그들의 특
성을 해체시키는 최후의 작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그들이 어떤 인물이었는 지에 대한 증거의 마지막 조각을 없애는 책임을 맡은 느낌이랄까. 고인이 된 부인의 장서는 그 부인의 개성, 말하자면 그녀가 남긴 것 가운데 유전 형질에 가장 가까운 취향의 기록이다.」
위의 글은 <서점 일기>의 내용 중에서 병들어 죽은 노부부의 집을 정리하기 위해 책들을 구매해달라는 어떤 농부의 부탁을 받고 주인공이 찾아간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유전 형질에 가장 가까운 취향’이라는 문장을 유심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집 속에서 이제 세상에 없는 노부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남기고 떠난 ‘책’을 살펴보는 것일 겁니다. 위의 글에는 없지만 노부인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몇몇 로맨스 소설과 흥미로운 모험담도 즐겨 읽는 분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분명 책을 읽으며 미소를 띄고 있는 노부인의 모습을 공간에 담고 있었을 겁니다.
사람도, 공간도, 겉모습이 아닌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제 아무리 멋지게 꾸미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 안을 꾸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 수준을 가늠하게 만듭니다. 건축에 있어서 공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건축주, 건축가, 시공사의 신뢰와 타협의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창조해낸 공간의 값어치를 나타내는 방법은 돈으로 치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물건을 어떻게 놓았는지에 달려 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공간을 대표할 ‘심볼(symbol)’의 중요성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위대한 건축가들은 설계를 하면서 가구까지도 직접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공간을 더욱 빛나게 해줄 ‘심볼(symbol)’들이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벽과 지붕으로만 공간을 논하는 것이 아닌 채워지는 물건들로 인해서도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수천, 수만, 그 이상의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일은 건축가들이 해도 좋겠지만 직접 이용할 건축주나 가장 가까이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시공에서 접근한다면 더욱 멋진 심볼들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은평구의 한 동네를 걸어 다니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동네 지도에는 ‘강아지와 함께 사는 집’, ‘돌담이 아름다운 집’ 등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집들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집들일지라도 ‘강아지’, ‘돌담’이라는 심볼로 인해 그 집들은 이미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3년 전 찾아간 여백서원과 <서점 일기>에서 만난 노부부의 집에서 느껴지는 ‘책’과 같이 우리의 공간에도 대표되는 심볼을 만들어주면 그 공간은 한층 더 특별해 보일 것입니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