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Buildings Don’t Lie

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목조주택에 처음 방습층(vapor barrier)이라는 개념이 생긴 시기는...

 

북미지역에 방습층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1930년대 말이다. 당시 새로 지은 주택들에서 나무 사이딩에 칠해진 페인트들이 얼마지나지 않아 지저분하게 벗겨지는 하자 문제들이 대거 나타났다. 특별한 변화 없이 그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공사를 해왔던 페인트공들에게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먼저 칠을 했던 오래된 집들은 멀쩡한데 유독 새로 지어진 주택들의 외벽 페인트들만 1~2년도 안되어 벗겨지고 들고 일어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성난 고객들의 항의에 놀란 페인트 시공업계 사람들이 원인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해 모여 머리를 맞댄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을 했는데, 하자가 생긴 집들은 대부분 당시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한 단열재가 시공된 집들이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집을 지을 때 단열재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페인트 시공을 거부하는 일들까지도 생겨났다. 시끄러운 사회문제가 된 이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의 임업연구소 등에서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물을 집대성하고 사회적으로 널리 알린 사람이 테일러 로저스라는 사람이다.


그는 단열재가 시공된 집의 페인트가 벗겨지는 현상은 실내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던 열이 단열재에 의해서 막혀 나무 사이딩의 건조를 늦추고, 또 차가워진 외벽엔 내부결로 등으로 인해서 습기가 더 많이 축적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실내 습기배출을 위한 지붕 벤트와 실내쪽 벽체에 방습층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그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져서 최근까지도 목조주택엔 기본적으로 실내쪽에 방습을 위해 비닐을 치는 시공이 이루어져 왔다. 우리나라도 추운 캐나다 지역의 목조주택 시공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초기에 지어진 집들은 대부분 벽체의 안쪽 부분에 습기이동을 위해 쳐놓은 비닐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방습층은 미국의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에어컨 사용이 일반화된 이후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일 경우 비닐 안쪽으로 결로가 생기는 역결로 현상이 발견되었고, 이후로는 지역에 따라 설치여부에 변화가 생겼다. 여름철이 덥고 습한 지역의 경우에는 실내쪽에 방습층을 두지 않는 것으로 규정이 바뀐 것이다. 북미지역의 기후대를 8개의 지역으로 구분을 하는데 그중 1, 2, 3번 지역과 4번지역중 덥고 습한 여름철이 있는 곳은 실내쪽에 비닐과 같은 방습층을 두질 않는다. 국내도 장마철이 있는 긴 여름을 가진 기후이고 에어컨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실내쪽에 비닐을 치질 않는 쪽으로 시공방식이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옛 방식을 고수하는 분들중엔 비닐을 치는 분들도 있다. 그럴 경우 여름철 냉방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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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목조주택의 방습층(vapor barrier)에 대해 헷갈려 하는 이유는...

 

가끔 목조주택의 실내쪽 방습층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질문자와 몇 차례 얘길 나눠보면 뭔가 기본적인 개념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보통 사람들은 방습층이라는 말을 들으면 진짜 말 그대로 비닐 같은 것을 쳐서 습기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국내 에너지절약 설계기준에서 그런 식으로 용어정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해외의 자료를 번역해서 사용할 땐 용어선택에 신중해야만 이런 일이 생겨나질 않는다.)


하지만, 목조주택의 원산지이고, 에너지절약 설계기준이 따라가고 있는 북미지역의 규정에 나오는 습기관리란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이름도 다르고 종류도 세분화되어 있다. IBC, IRC규정에 의하면 습기를 관리하는 재료들은 투습성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진다. 사용하는 용어 자체도 방습층을 의미하는 습기차단막(vapor barrier)이 아니라 습기지연재(vapor retarder), 습기관리층(vapor control layer)이다. 클래스 1, 2, 3 으로 구분된 습기지연재에서 우리가 방습층이라고 부르는 것은 클래스 1에 해당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방습층이란 용어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겐 클래스 2와 3에 대한 개념이 없다. 자꾸만 말이 헛돌 수밖엔 없는 이유이다. 작은 것에 큰 것을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목조주택의 벽체 습기관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방습뿐만 아니라 습기지연재, 습기관리층에 대한 개념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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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지연재 개념 이해를 위해선 습기의 이동방식을 먼저 알아야만...

 

방습층(vapor barrier)이나 습기지연재(vapor retarder)와 같은 습기관리층(vapor control layer)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선 먼저 습기의 이동방식에 대해서 알고 또 이해를 해야만 한다. 워낙 단순해서 안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로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방습층에서 얘기하는 습기는 물의 여러 형태 중에서 공기 중에 포함된 수증기(vapor)를 의미한다. 통상 습기하면 떠오르는 축축한 물기 같은 것을 포함하는 moisture보다는 다 좁은 의미이다. 공기 중에 포함된 수증기는 공기와 맞닿은 건축재료 자체를 투과하는 확산(diffusion) 방식과 공기가 유출될 때 함께 포함되어 이동하는 공기이동(air flow) 방식, 두 가지 방식으로 이동을 한다.


수증기의 이동방향은 수증기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수증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을 한다. 이동량은 확산에 의한 것보다는 공기의 이동에 의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래 그림을 보면 4*8피트 석고보드 한 장을 확산을 통해서 이동하는 수증기의 양은 1제곱피트의 구멍을 통해서 빠져나간 공기에 포함된 수증기량의 9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따름이다. 기밀시공이 강조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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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으로 이동하는 수증기의 양은 수증기가 접촉할 수 있는 재료의 표면적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접촉면적에 큰 변화가 없으면 확산에 의한 수증기 이동량에도 영향이 적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 기초 아래에 자갈을 깔아 모세관현상의 발생을 방지한 후 그 위에 비닐을 깔 경우 비닐에 구멍이 있건 없건, 설령 찢어진 부분이 많다고 할지라도 콘크리트와 비닐이 맞닿는 전체 접촉 면적에만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수증기의 이동량엔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이다.


비닐에 구멍이 날까봐 노심초사하고 연결부위는 테이프로 다 막고, 심지어는 구멍날까봐 매우 두꺼운 비닐제품을 가져다 쓰고 하는데 이는 수증기의 이동방식에 대해서 잘 몰라서 생기는 현상이다. 비닐 위에 시공되는 콘크리트는 공기가 통하질 않는다. 공기의 이동이 없으면 수증기의 대량이동이 일어날 수가 없다. 비닐에 구멍이 난들 전체 접촉면적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대세에 지장이 없다. 그래서,
비닐 설치할 때 골프화 신고 뛰어다니며 구멍을 내 놓아도 투과되는 수증기의 양엔 별 변화가 없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BSC의 조셉 스티브룩 박사가 늘 하는 말이다.

 


습기의 이동방식을 알면 관련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취약점도 알 수 있다.


건축관련된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필요가 없다.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제한요소가 많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겨우 일부만 정해진 조건 안에서 해석이 가능할 따름이다. 단열과 습기문제 등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는 WUFI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건 그냥 벽체를 이런 식으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시뮬레이션해보는 정도의 용도이다. 여기에 나온 결과물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왜냐면 시뮬레이션을 할 때는 재료들의 습기투과성 같은 수치들을 입력하는데, 그 얘긴 확산에 의한 습기의 이동수치만 들어간다는 얘기이다. 컴퓨터속의 도면과 같이 퍼펙트한 시공이 이뤄진다면 그런 시뮬레이션의 결과물이 가진 의미가 클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벽체의 콘센트 구멍하나, 천정의 매립등 하나만으로도 시뮬레이션 결과와는 다른 일들이 생겨난다. 이유는 확산보다는 공기에 의한 습기의 이동량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한계점들을 알고 자료들을 활용해야만 한다.


실제로 주택검사를 하다보면 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는 많이 더 복잡하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생겨난 문제도 있고, 이건 분명 문제라고 생각하고 파보면 아무 이상도 없는 경우들이 많다. 현실과 이론사이에는 커다란 틈새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컴퓨터 프로그램은 참고자료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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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후의 북미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는 벽체들의 습기관리 구조


혹자는 북미지역엔 우리나라와 같은 기후가 없어서 북미식 목조주택이 우리나라엔 맞지 않다는 식의 얘길 하지만, 그건 집이 가진 기본적인 범용성과 내구성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얘기이다. 그 넓은 북미지역 중에 우리나라 기후와 비슷한 곳이 없다는 얘기도 맞지가 않을뿐더러, 북미지역은 우리보다 훨씬 더 기후대가 다양하고 극과 극을 달리는 지역들도 많지만 전국적으로 공통으로 사용되는 벽체 구조들이 있다. 그 얘기는 목조주택의 벽체구조란 기후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는 범용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국내의 목조주택들도 대부분이 이런 구조들을 활용해서 집을 짓고 있다. 그러니, 너무 방습층이 어디에 있느니 하는 식의 작은 부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집은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이라는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아래의 네 가지 방식은 북미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는 습기관리방식들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은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상태로 사용이 되어도 문제는 없는 구조들이다. (아래 그림들과 내용들은 파인홈빌딩 매거진 기사를 인용했다.)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구조이다. 더운 지역에선 투바이포, 추운 지역에선 투바이식스 구조재를 사용해 단열재의 두께만 달라진다. 안팎으로 건조가 잘되는 구조이다. 주의할 점은 덥고 습한 지역에선 실내쪽에 실크벽지와 같은 투습성이 낮은 비닐성 재료를 사용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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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벽체는 하우스랩과 OSB 대신에 그 둘의 기능을 통합한 집시스템을 사용한 방식이다. 단열재는 미네랄울 단열재이다. 바깥쪽으로는 레인스크린 시스템을 설치해서 건조력을 확보한다. 그대로 사용을 해도 되지만 추운 지역에선 미네랄울 단열재는 글라스울과 같은 크래프트지가 없기 때문에 대용으로 가변형 투습지를 함께 시공을 한다. 겨울철 습기의 유출을 줄이고, 여름철 실내쪽으로의 추가적인 건조력
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고 기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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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앤필(Flash and Fill) 방식은 벽체의 중간 부분, OSB의 안쪽에 투습성이 거의 없는 경질스프레이폼을 얇게 뿌려서 습기이동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빈공간은 셀룰로오스로 충진을 한다. 바깥쪽은 레인스크린시스템으로 건조력을 확보하고, 안쪽으로도 습기의 이동을 저해하는 재료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방식은 경질스프레이폼을 어느 정도 두께로 시공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국내와 같은 기후에선 2인치정도 두께이면 내부 결로 등의 문제는 생겨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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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용이 늘고 있는 외단열방식이다. 이 경우는 외단열재가 주요한 습기관리층이 된다. 누수와 결로 등의 문제로 OSB부분이 젖을 수가 있기 때문에 예방차원에서 외단열재와 OSB 사이엔 작은 간격을 만들어줄 수가 있는 하우스랩 종류들이 보강이 된다. 이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실내쪽으로 건조력을 확보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실내쪽에 습기이동을 방해하는 실크벽지 등의 비닐성 재료들은 사용을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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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l_8.JPG   BSI 건축과학연구소 김정희 소장

전직 빌더 출신으로 빌딩 사이언스 탐구에 뜻을 두고 2016년 BSI건축과학연구소를 설립한 후,
주택하자 문제 연구와 주택 검사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홈인스펙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