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의 간식>에서 죽음을 기다려 보다.

‘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라이온의 간식>에서 죽음을 기다려 보다.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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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죽음이 눈앞에 있다면 어디서 눈을 감고 싶 으신가요? 저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많은 추억을 쌓아왔던 집에서 눈을 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추억들을 곱씹으며 나의 인생은 어떠했는지 다시 한 번 천천히 되돌아보고 즐거웠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남아 있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바람 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떠나갈 수 있는 시간 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떠난다면 재미난 삶이었다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 외할아버지는 말기암 판정과 동시 에 입원을 하시게 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의사의 치 료 권유를 뿌리치시고 병원이 아닌 자신의 집으로 가 고 싶다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께 서는 한결 편안하게 잠에 드실 수 있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저희와 함께 살았 던 집의 추억들을 읊으시면서 잠에 들곤 하셨습니다.

 

 

비록 임종은 병원에서 지키게 됐지만 저는 분명 잠시나마 집에서 지내셨던 그 마지막 순간들이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큰 행복이었을 것이 라 믿고 싶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집은 병원보다 더 안락하고 따스한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소개드릴 <라이온의 간식>은 암으로 인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주인공이 ‘라이온의 집’이라고 불리는 요양원에 들어가 죽음을 기 다리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흔히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바라고 있는 엄청난 기적 따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담담히 그려내고 갑작스러운 이별이 갑작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뎌지고 절제된 감정들이 더욱 현실적으 로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죽은 뒤의 즐거움, 지금도 라이온의 집에 많이 있잖아요. 말 앞에 당근 매달고 달리게 하는 것처럼 아침 죽이라든가 점심 뷔페, 저녁의 1국 3찬, 일요일 간식 시간. 뭔가 전부 음식 관련이지만, 그런 당근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요. 죽은 뒤에도 그런 즐거움이 있다면 구원받 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그걸 갖고 싶은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간다고 할까. (후략) <라이온의 간식>, 102p」

위의 장면은 자신의 운명을 더 이상 다른 경로로 바꿀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주인공 자신을 죽음이라는 종착지까지 눈앞에 당근들에 정 신이 팔려 달리는 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근들이 결코 나쁘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강한 약을 사용하면서도 라이온의 집이 주인공에게 선사하고 있는 당근들은 어차피 변경하지 못하는 종착지까지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죽음과 마주하는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어둡고 칙칙한 곳에서 슬픔이 가득 흘러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이온의 집은 그런 이 미지에서 벗어나 죽음으로 가는 길을 무엇보다 멋지고 의미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여기서 이 공간을 요양원이라는 단어가 아 닌 ‘집’이라는 평범한 단어를 활용했다는 것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보통 치료를 포기한 분들을 케어하는 곳들은 전문적인 용어로 공간을 나타내기 마련이지만 라이온의 집만큼은 이들을 반기는 또 하나의 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주인공이 처음 이 공간으로 올 때 들고 온 여 행가방과 함께 죽음을 넘어 긴 여정을 떠나기 전, 잠시 들렸다 가는 따뜻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은 라이온의 집으로 돌아오려고 몸을 틀었을 때였다. 현관 앞 굵은 양초에 불이 켜져 있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주위의 뻗은 그림자가 몸을 크게 흔들었다. 마치 불 그 자체에 감정이 있고, 뭔가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곳에 온 뒤, 처음 보는 촛불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이사 온 후 처음 보는 광경은 바로 누군가가 죽음을 넘어 더 긴 여정을 떠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은 작 중 시간으로 바로 전날 돌아가신 분에게 처음으로 맛있게 내려진 커피를 대접받았고 그 맛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라는 것은 이별을 말하는 시간을 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다가오게 되는 법입니다. 흔들리는 촛불은 아마도 말하지 못한 이별을 대신해 서 전하려고 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라이온의 집은 그렇게 어느 순간 누군가가 긴 여정을 떠나고 또다시 긴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말로 전하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집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역 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공간에 들리는 모두가 죽음이라는 슬픔에서 벗어나 서로를 더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온의 집이 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일 겁니다. 달리는 말 앞에 맛있는 당근들이 계속해서 놓이듯이 떠나는 순간까지 행복할 수 있도 록 만드는 공간이 그들에게 필요했고 라이온의 집은 해냈습니다.

 

이 소설은 죽음이라는 소재로 시작했지만 끝은 결국 라이온의 집을 떠나며 행복을 찾아갑니다. 행복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온의 집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공간이 현실에도 있다면 우리는 죽음과 좀 더 멋지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