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읽다보면, 어느덧 우리는 그 공간에 있음을 느낀다.

‘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읽다보면,

어느덧 우리는 그 공간에 있음을 느낀다.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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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리턴 투 호그와트>라는 제목으로 세기의 명 작이자 영화로 큰 인기를 누렸던 <해리포터>의 배우 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방영됐습니 다. 설연휴 동안에도 한국의 여러 방송사를 통해 알 려지기도 했습니다. 책방지기는 <해리포터> 소설을 읽으면서 마법사들을 위한 학교가 영국에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믿은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가 개봉됨과 동시에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리포터>라는 소설을 읽으며 상상할 수 있었던 장면들이 영화에 고 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소설 원작 작품들이 등장했 지만 <해리포터>라는 작품이 보여줬던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던 힘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민가를 가게로 개조한 듯하다. 꽃 이 없는 마당에는 기둥도 쇠줄도 벌겋게 녹슨 그네가 방치되어 있고, 문 양옆에는 종려나무가 지킴이처럼 우뚝 서 있다. (중략)

 

 

가게 안은 허름한 외관과는 사뭇 달랐다. 아담하고, 청결하고, 정연했다. 올록볼록 무늬가 도드라진 하얀 벽지는 막 빨아 다림질하기 전 의 시트처럼 뽀얗고, 진한 갈색 바닥은 아이스링크로 사용해도 될 만큼 반짝거렸다. 라벨의 방향이 가지런하게 진열된 각종 약제는 완벽 주의를 지향하는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무대 위에서 정확하게 자기 위치에 선 배우처럼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中 바다가 보 이는 이발소 편에서, p.99)

 

 

판타지나 SF 소설 속 공간들은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과 글 솜씨로 인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독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이들이 읽을 것인지 예상하고 그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재들을 잘 골라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판타지나 SF 소설 속 공간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현실 속 우리가 사는 모습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봤던 장소를 설명할 때, 짧은 몇 마디로 공간을 설명하게 되면 듣는 이의 머릿속에는 설명하는 사람이 봤던 장면들 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공간을 창조해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살아가는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허름한 집’이라는 표 현 하나만으로는 특정 짓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짧은 몇 마디에 살을 붙여 공간이 정말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명 을 불어넣게 됩니다. 위의 소개한 문장을 보게 되면 녹슨 그네와 관리되어 있지 않은 정원은 머릿속에서 그려집니다. 책방지기는 어느 미 국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종려나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이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을 해 보지 않고 모르고 넘어간다면 그 순간 처음부터 머리에 그려 놓은 공간에 허점이 생기기 시작하고 우리는 소설에 제대로 빠져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설명하고 있는 공간의 내부 모습은 작품의 제목과 같이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이발소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저런 멋진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뢰감과 주인의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겉모습과 반전된 표현으 로 인해 주인공이 어떻게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지가 인상 깊게 자리 잡습니다. 이런 짧지만 강렬한 공간 설명으로 인해 우리 는 우리도 모르게 직접 그 이발소에 앉아 있는 주인공 자신과 동일화되기 시작합니다.

 

<해리포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공간이 실제로 존재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방법은 현실과 가상 사이에 글로 만들어진 ‘상상력’을 아름답게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한 작품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공간의 설명을 시작으로 한 이발사가 주인공고 서로 거울 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자신은 책이 아닌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있는 느낌과 함께 머 리 뒤쪽에서 이발사의 자상한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겁니다.

 

공간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따라서 친밀감은 천차만별이 됩니다. 아직 창조되지 않은 공간을 설명해야 하는, 실물을 바로 보여줄 수 없 는 자재를 안내해야 하는 모든 분들께서 실사용자에 맞춰 창의적이고 더욱 친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말 하기에 따라서 건축은 쉬워 보일 수도 있고 어려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가가 독자를 공간으로 끌어드리듯이 건축업계가 건축주들이 더 좋은 건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공부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