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비 무료? VS 1억으로 집짓기?

기본 이야기 #4

설계비 무료? VS 1억으로 집짓기?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건축 상담 그리고 시공 현장에서 벌어지는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즈음 건축주는 너무 똑똑하다. 그 기반은 각종 세미나 그리고 유튜브, 건축 관련 책들이다. 이렇 게 공부를 하고서도 기본조차도 모르고 저지르는 일들이 많 다. 그 내용들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


 

본 기자는 1년에 10번 가까이 전국 건축박람회에 참석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건축주 그리고 시공사 등 건축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계몽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유가 있어서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졌겠지만, 이로 인해 벌어지는 엄청난 일 들은 건축주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사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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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산업은 유일하게 건축주만 돈을 낸다.

건축주가 돈을 내면 비로소 산업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건축 산업은 오직 건축주의 집과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마케팅이 본격화되면서

설계비무료!

 

어느 순간 시공사의 부스에는 ‘설계비 무료’라는 배너 현수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업체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자 곧 많은 시공사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마케팅 전쟁이 시작된 듯 이제는 추가항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설계비 무료에 이어 데크 무료, 주방가구 무료 등 무료 품목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어떤 한 개인의 아이디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산업이 함께 성장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함께 공멸하게 하기도 한다. 설계비 무료라는 문구를 바라보는 업계의 반응은 곱지만은 않다. 그것도 설계의 주체인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시공사에서 낸 건 조건이다 보니 특히 건축사 분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일단 성공한 듯했다. 설계비 무료 등 각종 무료 항목을 표기하여 배너 현수막을 내건 시공업체의 부스에는 상담을 받고자 하는 예비건축주들로 가득했다. 이러한 풍경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더 자극적인 문장으로 발전해 가

1억으로 집짓기!

 

한 번 시작된 마케팅은 방향성을 점점 더 분명히 해 갔다. 건축사부터 건축주에 이르기까지 ‘1억으로 집짓기’라는 문구가 들어간 책들이 대거 서점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1억으로, 1억대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1억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역설적인 내용까지 다양했으며 그 범위도 목조주택부터 한옥까지 모든 구조를 포괄했다.

‘1억으로 집짓기’라는 문구는 어떻게 1억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발길들을 붙잡는데 어김없이 성공했다. 전시장에 출품한 시공사의 시공사례 판넬 사진에도 1억대의 주택 사례들이 부착되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어김없이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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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상담석 자리에 앉으면…

건축이 마케팅 아이템이 되어도 되나?

 

그러나 정작 상담석에 앉으면 조건이 있는 ‘1억 집짓기’였음을 알게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담의 기회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건축에 대한 소비자의 그릇된 인식을 심을 수 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문장들은 건강한 집짓기를 추구 하고 있는 대다수의 건축가 분들을 힘들게 만든다.

 

최근 ‘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이 법제화되면서 개업한 그리고 신규 개업하는 모든 건축사는 대한건축사협회에 의무 가입을 해야 한다. 이 는 만연되어 있는 건축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자정 작업을 통해 개선함으로써 건강한 건축시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고 한다.

 

건축의 모든 원죄는 건축사에게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그 이유는 법과 자격증을 가진 유일한 그룹이 건축사이기 때문이다. 건축사 에서부터 출발하는 자정 작업은 선행된다면 건축시장은 빠르게 개선될지도 모른다. 건축 설계에서부터 구조 인허가 감리까지 건축사의 권리를 회복하고 건축사 본연의 마땅한 업무를 스스로 수행하며 건축의 모든 부분을 책임지려고 한다면 지금 편만해져 있는 건축 시장에 서의 외침과 마케팅 업체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본연의 책임을 져야하는 주체가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하면 그 자리를 다른 주체가 떠 맡아야한다. 그런데 책임까지 떠넘기려 한다면 과 연 그 주체자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건축이 무너지는 시작점이 여기에 있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다.

 

아파트 시장이 주도하는 건축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케팅 시장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개인 주택을 짓고자하는 건축주 분들은 획일화된 구조를 벗어나 우리 가정 구성원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러한 건축 시장에 아파트의 논리를 가지고 마케팅을 하 고 있는 분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건축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사람이 살아가고자 하는 공간을 만드는 기업들이 사람 개개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목적지는 과연 무엇이라 는 말인가? 건축주 개개인의 최적화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고뇌하며 만들어왔던 주택 산업에 주택을 단지 마케팅의 한 아이템으로 규 정하고 영업을 하는 사람들과 기업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산업은 혼란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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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장에서 외치는 사람들

믿고 싶으세요? 진짜로 믿는 건가요?

 

최근 건축박람회 세미나 장에서는 그전과는 다른 강의들을 들을 수 있다. 건축을 건축사나 시공사의 입장이 아닌 건축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건축주의 권리를 되찾아주려는 지금까지와는 반대되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건축이 건축주를 위한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이제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일이라고 안위할 수밖에 없다.

 

‘믿고 싶으세요? 진짜로 믿는 건가요?’

‘무료’라는 단어, ‘1억으로 집짓기’라는 문장에 반응하는 건축주 분들을 향해 던지는 안타까움이 담긴 외침이었다. ‘자신과 가족 분들을 위해서 제발 법대로 하세요.’ ‘건축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들을 공짜로 얻으려고 하지 마세요.’ 등등… 그 동안 건축주 분들이 너무 쉽게 포기했던 권리들을 일깨워 주려는 외침이 전시회 기간 내내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 정말 잘 못 생각했었습니다.’라며 강의 후에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는 분들이 많았다.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면 그 권리는 다른 주체에게 넘어가며 넘어간 권리가 더 선한 모습으로 발전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악순환을 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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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되찾아라 외치는 사람들

 

건축주가 포기한 권리는 건축사와 시공사에게 넘어간다. 건축사가 포기한 권리는 건축주와 시공사에게 넘어간다. 시공사마저 권리를 포 기하면 건축이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하기 힘들다. 그나마 건축이 이 정도 버티고 있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권리를 지켜내고 있는 소 수의 사람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건축사가 아닌 시공사가?

4일간 강의를 진행했던 강사 분들은 ‘제발 설계부터 하세요.’ ‘설계비는 아끼지 마세요.’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강의를 진행했던 분들은 시공사 대표들이었다. 어떻게 건축사도 아닌 시공사 대표들이 이런 강의를 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런 세태를 어떻게 바라보아 야 할까?

 

A 시공사 대표는 “건축설계는 적어도 100페이지는 넘어야 합니다. 4장짜리 10장짜리 도면을 들고 와서 견적을 요청하거나 시공을 의뢰 하는 건축주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라며, “이런 도면을 그려주는 건축사가 있기 때문에 시공사가 100페이지가 넘는 건축도면을 다시 그 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B 시공사 대표는 “건축사 분들이 디자인 도면만 그리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라며, “시공과 자재가 고려되지 않은 도면을 받을 때에는 정말 건축사가 그린 도면이 맞나 싶을 때가 한 주번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부터 하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사 스스로 던져버린 권리를 시공사가 그 권리를 되찾으라고 외치는, 건축주에게 말했다 보다는 건축사에게 던진 메시지라고 느꼈던 것은 본 기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이 강의를 듣고 잇는 분들 중에 건축사 는 없을까?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C 건축사는 “건축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맞습니다. 건축사만이 법적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건축사의 고유 권한인 재 료 구조 행정부분을 다시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고 도면으로 그려내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건축사는 디자인만 하는 사람이 아 닙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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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도 자신의 권리 주장해야

 

건축주가 자신의 집과 가정을 위한 주택을 짓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건축주의 권리를 찾는데 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어디서 아끼든지 주택의 품질과 자재 등급을 낮추지 않고 동일 조건에서는 총 공사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마케팅 영업업체를 줄이는 방법은 설계도면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도면으로 건축사를 알아보고 도면을 가지고 자재의 수준을 정해야 하며 도면을 가지고 시공견적을 뽑아야 한다. 본 기자가 수많은 현장을 다니다보면 제대로 된 도면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된 도면을 제시해도 물량산출이나 견적을 제대로 뽑는 시공업체 또한 드물다. 그래서 건축주가 제대로 된 업체를 만나는 방법, 건축주 스스로 합법적인 과정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설계비 무료! 1억으로 집짓기!

제대로 된 설계와 건축 과정을 무시한 건축사 그리고 시공사가 영업을 위해 던지는 말과 문장들에 자금을 맡기는, 그렇게 운에 맡기는 집짓기를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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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빌더 김창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