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야기 #5
설계비, 견적비 당연히 지불하자?!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건축 상담 그리고 시공 현장에서 벌어지는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즈음 건축주는 너무 똑똑하다. 그 기반은 각종 세미나 그리고 유튜브, 건축 관련 책들이다. 이렇 게 공부를 하고서도 기본조차도 모르고 저지르는 일들이 많 다. 그 내용들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
본 기자는 1년에 10번 가까이 전국 건축박람회에 참석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건축주 그리고 시공사 등 건축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계몽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유가 있어서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졌겠지만, 이로 인해 벌어지는 엄청 난 일들은 건축주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사건이 되기도 한다.
건축 산업은 유일하게 건축주만 돈을 낸다.
건축주가 돈을 내면 비로소 산업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건축 산업은 오직 건축주의 집과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미 수많은 기업의 풍토는 수평적 협업의 시대로 넘어 선지 오래다. 기업 내부에서 신입사원이 회사 대표에게 직함이 아닌 이름을 부르 거나 ‘님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소위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상호존중과 협업’의 마인드로 관계를 정립하고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 이다. 그러나 건축업계에서 ‘갑’과 ‘을’의 관계는 영역 다툼을 넘어서 주도권 싸움까지 화합과 상생을 위해 도무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 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그 피해가 건축주에게 돌아간다. 전시장을 찾는 소비자 분들 중에 간혹 이런 질문을 한다.
‘건축사에게 지불하는 설계비 얼마가 적당할까요?’
‘시공사에서 설계비 무료로 해 준다는데 괜찮은 건가요?’
‘견적비용을 얼마나 드려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건강한 건축을 위한 최소한의 가능성을 발견한 기쁨이랄까…
이번 컬럼은 그래도 희망의 목소리를 담아보고자 한다. 건축박람회장을 찾는 건축주 중에서, 시공사 중에서, 건축사 중에서 드물게 발견 하지만 정도를 걷는 분들이 있다. 월간빌더는 이런 분들을 발굴하고 함께 건강한 건축 산업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가치를 실현해 보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설계비는 얼마가 적당한가요?
설계비 무료, 시공사가 정해도 되나?
설계비에 정해진 금액이 존재하거나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계비는 존중받아야 하고 최소한의 묵시적 기준은 인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5년의 학부와 3년의 기초실무경험 그리고 건축사 시험을 통과하여 취득한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는 분 들이 수행하는 전문 분야이기 때문이다.
전시장 부스를 방문한 건축주 분들 중에
“설계비는 얼마 정도를 지불하는 것이 적당한가요?”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분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설계비의 현실은 그야말로 기준이 없다. 허가방부터 인지도에 따라 수백만원부터 억단위까지 천차만별이다. 우선, 기준안부터 살펴보자.
건축설계는 건축법 제23조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거나 건축신고를 하여야 하는 건축물, 주택법 제66조 제1항 및 재2항에 의한 리모델링 건축물, 통상적으로 허가나 신고가 필요한 가설건축물을 제외한 모든 건축물은 건축사가 설계해야 한다.
건축설계비는 건축사법 제19조3 규정에 따라 건축사 용역의 범의와 대가기준에 따라 건설공사비의 비율로 정하는 방식과 실제 설계업무 에 투입된 인력과 시간을 연산한 맨아워 방식이 있다. 대가 기준에 따른 건축물의 설계대가 산정을 하고 싶으면 대한건축사협회 홈페이 지에 총공사비만 넣으면 설계비와 감리비가 자동으로 산출되는 정보가 있어 참고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순수 건축비의 약 10% 정도를 설계비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순수건축비란 인테리어나 조경 등이 포함되지 않은 건축비를 말한다. 시중에서 형성되고 있는 설계비는 반드시 설계를 잘해서 높은 금액을 받고 설계를 못해서 낮은 금액을 받는 것이 아니다. 유명세 나 인지도가 높아도 설계를 못하는 곳도 있고 유명세나 인지도가 없어도 숨은 고수 분들이 있기도 한다.
건축박람회장에서 발견되는 문구 ‘설계비 무료’
시공사가 설계비를 정해도 되는가?
기자가 취재를 위해 만난 한 건축주는 시공사와 계약을 하면서 ‘설계비 무료’라는 말을 들었는데 시공을 진행하다가 중도에 계약을 파기 했다고 했다. 설계 변경을 위해 건축사사무소에 연락을 하게 되면서 설계비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시공사가 그린 도면을 단순 행정업무만 진행해 준 소위 저렴한 지방의 ‘허가방’이었고, 건축주와의 응대를 소홀히 할 뿐만 아니라 연락조 차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허가방’도 비용은 들어간다. 그럼 서비스로 해 준다고 했던 설계비는 과연 어디에 녹아져 있을까? 시공사를 향 한 건축주의 신뢰는 무너져 내렸다. 건축주가 더 황당했던 것은 계약의 수정을 요구하자 ‘법대로 하라’고 통보해왔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건축주는 법대로 해야 한다. 건축주는 건축을 계획하면 제일 먼저 설계를 하려고 해야 한다. 건축주가 건축 준비를 위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건축박람회장이다. 그러나 건축박람회장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시공사만 발견하 게 된다. 정작 건축의 시작점에 있는 건축사는 건축을 주도하거나 건축주를 계몽해야 하는 자리에는 없다. 건축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안전한 건축을 위한 기본 소양을 알려야 한다. 바로 건축사가 해야 한다고 본다.
설계비를 결정하는 권한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건축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본 기자와 이야기 를 나누었던 한 건축사는 ‘건축사가 건축박람회에 나오는 것은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래서 건축박람 회 장에서 건축사 분들이 안 보였던 것일까? 그러는 사이에 건축 산업은 어떻게 이해되고 변해가고 있는가? 그 현상을 바라보고 건축사 분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뒷전에 앉아서 건축주와 시공사에게 어떤 비판들이나 하고 있는가?
견적비 무료!
건축사가 정해도 되나?
반대로 건축사가 시공사에게 무료로 견적을 내라고 하는 경우이다. 복잡한 현장은 1주일씩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구조를 풀어야만 견적 산출이 가능한 현장의 경우에는 추가 비용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건축사의 지적 재산과 시간의 비용을 중요시 한다면, 시공사의 견적 비 용에 대해 마땅히 지불해야하지 않을까?
건축사가 견적비를 정해도 되는 것일까? 견적은 무료?! 견적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 닐까? 건축사는 견적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것인가?
최근 들어 많이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건축사가 시공사에게 뒷돈을 요구한다는 이야기이다. 비단 시공사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 재업체에게도 그런다고 한다. 물론 극히 일부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기고 있어 마음이 힘들다.
실력이 쌓일수록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인격이 성숙해지면 안 되나?
건축에서 유일하게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축사가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하는 자세를 가져주어야 할 것이다.
권한을 남용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는다면
건축 산업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설계비 견적비 무료!
건축주가 정해도 되나?
건축주가 직접 시공사를 방문하여 상담을 한 뒤 견적서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2~3군데 이상에서 견적을 받는데, 한 군데 시공사 를 결정하거나 때로는 견적을 받은 그 어떤 업체와도 시공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견적비는 당연히 무료라고 여기는 소비자 가 대부분이다. 시공사들은 견적을 낸 후 소비자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최근 견적비를 유료로 운영하는 시공사가 늘어나고 있다. ‘저는 건축사 또는 건축주에게 견적비를 요구합니다.’라고 말하는 시공사 대표 는 올바른 건축 문화의 정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돈 보다는 일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이 산업을 주도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시공 품질을 높이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기 보다는 일을 맡기 위해 건축사와 소비자에게 영업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면 건강한 건축 을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다.
본 기자는 취재 중 가끔 이런 내용을 전해 듣게 된다. ‘건축주로부터 소액이 담긴 봉투와 함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전달 받았습니다.’ 다른 시공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견적하느라 수고하신 것에 대한 작은 성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 란다. 아니 당연해지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
여러 시공사를 방문하여 상담을 하고 견적을 요청했습니다.
그 중에 한 업체를 선정했는데,
나머지 견적을 해주신 업체에게는
견적비를 얼마나 드리는 것이 적정할까요?
본 기자에게 위와 같이 묻는 건축주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마음이 얼 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시공사 견적비라는 항목 자체가 없다. 그야말로 성의의 문제이다. 설계 도면이 자세하면 견적서 작성 시간이 덜 소요되지만, 설계도면이 디자인 중심이고 시공 디테일이나 자재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면 그야말로 몇 배 의 시간이 소요되게 된다.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 이 들어간다. 관련 분야 전문가의 책정 월급을 소요시간으로 역산하면 대 충 예산을 할 수 있다.
누가 ‘갑’인가? 결국 모두 ‘을’이다
수평적 협력관계는 불가능할까?
설계비 그리고 견적비를 무상으로 여기는 데에는 ‘갑’과 ‘을’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고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본 기자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건축주 건축사 시공사 모두 스스로를 ‘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같은 주체끼리도 심하고, 각 주체 간에는 더욱 심하다. 최근 건축주의 정보 접근량이 증가하면서 건축사나 시공사에 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부정확한 정보와 연결성이 없는 정보의 조합으로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건축주가 노 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주의 노력으로 각 주체 간 명료했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건축주는 설계 영역에 의견을 내고, 시공사는 감리와 시공공법까지 건 축사에게 의견을 내고 있다. 건축주는 수많은 책자와 강의 그리고 온라인 영상 등을 통해 꾸준히 학습을 하고 있다. 시공사는 자재와 시 공 디테일에 대해 밤을 세워가며 연구를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건축사와 시공사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는 건축사 분들이 공간과 외관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시공사와 건축주 분들은 각종 교육의 기회를 통해 자재와 시공공법 그리고 하자를 만들 수 있는 디자인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수평적 협력관계를 만들자!
건축주를 중심으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설계 당시부터 건축주 건축사 시공사 자재 및 공정별 전문가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의논할 수는 없을까?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 현하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 건축가가 늘어나고 있다. 설계단계에서부터 시공, 자재, 인테리어 마감까지 동시에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공 사 중간에 발생하는 설계변경이 적고 주택의 마감 완성도가 뛰어나다.
이런 방법으로 건축을 했던 건축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상도 못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희 집을 위해 많은 전문가 분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의논하는 광경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라며,
‘집을 짓는 내내 제가 존중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건축주 한 가정의 집을 위해 건축에 관련된 모두가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건축주에 의해 산업이 시작되니 건 축주의 집과 가정의 행복한 미래만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자세가 아닌가?
건축주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 자기 주도권 싸움에 목을 매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것이야말로 자격미달은 아닐 까? 우리 모두는 건축의 모든 분야를 완벽하게 다 알지 못하지 않는가? 각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자세, 그래서…
‘갑’과 ‘을’의 논쟁을 멈추고
동등한 테이블에서 협력을 해야 하지 않는가!
| 월간빌더 김창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