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에서 담이 높은 집을 만나다

‘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밝은 밤>에서

담이 높은 집을 만나다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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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대문 열쇠를 어디에 숨기고 있는 지도 알고 지냈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던 때가 정말 행복했고 그리워집니다. 물론 안일한 나머지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우던 개들이 도둑보다 나쁜 개 장수들에게 잡혀서 사라지거나 할머니께서 키워 놓으신 꽃들이 반갑지 않은 산책인들에게 뜯겨 나가기 일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가족이라 고 생각했던 주변 이웃과의 거리가 정말 보이지 않을 정 도로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분명 거리상으로는 시골에 있던 때보다 가까워졌지만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아파트 의 벽들은 마치 시공간을 휘감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게 만든 뫼비우스의 띠를 같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밝은 밤>은 일제시대부터 시작해 6.25전쟁을 겪고 현대에 이르기 까지 4대에 걸친 여성들 의 삶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개성 근처 마을에서 시작된 여정은 전쟁과 함께 대구를 지나 작은 바닷가 마 을까지 이어집니다. 여러 고된 풍파 속에서 주인공들과 주변인들은 서서히 변했고 스스로 터득한 삶의 방식으 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 이야기 중 주인공이 대구에 있 을 시절, 집에 대한 묘사가 아래와 같이 나오게 됩니다.

 

「마루에 서 있으니 그제야 집의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마루에서 대문까지 몇 걸음 되지 않을 정도로 마당이 작았고 높은 담 위에 뾰족 한 사금파리들이 박혀 있었다. 개성에서는 그렇게 담이 높은 집을 본 적인 없었다. 방 두 개에 부엌 하나, 변소 하나가 전부인 작은 집에 그렇게 높은 담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p.181)」

 

주인공의 질문처럼 담을 높게 쌓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피난으로 인해 당시 대구의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잠자리조차도 없어서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제대로 된 음식조차 없었기에 매일매일 굶으며 버텨야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대구로 먼저 내 려간 가족과도 같은 이웃집 덕분에 주인공 가족은 썩 괜찮은 생활을 이어갑니다. 주인공이 개성에 살던 시절에는 담이 높을 필요가 없었 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눠 쓰면서 서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서로 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대구집도 담을 높게 쌓는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담을 타고 넘어오는 것을 대비해 뾰족한 사금파리들을 박아 놓은 것까지 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의 담이 높은 집은 시대적 상황뿐만 아니라 집주인인 ‘명숙’ 할머니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중 인물인 명 숙 할머니는 수녀로 살다가 일을 그만두고 대구에 남아 작은 집을 얻어 담을 높게 쌓고 옷수선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 사이에 전 쟁으로 인해 가족이 늘었고 집은 북적거립니다. 주인공은 명숙 할머니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차가움을 느끼지만 명숙 할머니가 점차 바느질을 가르쳐주고 다른 누구보다 주인공을 더 많이 생각해주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에는 신뢰와 사랑이 싹틉니다.

 

담이 높게 쌓여 있고 차가워 보이더라도 그 안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면 따뜻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안을 멋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허 락되지 않을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집과 사람은 참 비슷합니다. 명숙 할머니가 주인공에게 처음엔 무뚝뚝하고 차가웠지만 점차 주인 공을 더 아끼고 사랑해주는 인물로 변화하는 것처럼 집이라는 공간은 사람과 같이 반갑지 않은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울타리가 되거나 마음을 열어 들어온 이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정을 나눠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느꼈던 그 거리감은 서로를 믿지 못하거나 무관심해지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담을 쌓다 못해 이제는 하 늘이 보이지 않는 집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안전한 대한민국 안에서 담을 조금 내려 하늘구멍을 내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서로 간의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만들어볼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