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s Don’t Lie
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목조주택에 실내 방습층이 없으면 잘못 지은 집? 아닙니다.
아래에 두 종류의 벽체를 만드는 시공 장면이 있다. 하나는 전통 한옥의 벽체를 만드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경량 목조주택의 벽체를 만드는 장면이다. 전통적인 한옥의 벽체는 얇은 나무 막대를 세우고 그 사이에 대나무 같은 것을 수평으로 새끼줄로 묶은 후 그 위에 안팎으로 황토를 붙이고 미장을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목조주택의 벽체는 구조재로 스터드를 세우고 그 위에 OSB로 덮은 후 그 위에 타이벡과 같은 넓직한 투습방수지를 붙여서 만든다. 이 둘 중 어느 쪽 벽체가 더 물에 강한 벽체일까?
사용된 재료만 보면 당연히 흙벽보다는 목조주택의 벽체가 훨씬 더 물에 강하다. 흙벽에 물을 계속 뿌리면 푹 젖고 흙이 흘러내리지만 투습방수지인 타이벡 위에 물을 뿌리면 물만 줄줄 흘러내릴 뿐이다. 투습방수지는 외벽에 고어텍스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집을 지은 후 시간이 지나서 살펴보면 물에 취약한 전통 한옥의 벽체는 오히려 멀쩡한 반면, 목조주택의 벽체는 아래의 사진처럼 상해버린 경우들이 발견이 된다. 어째 첨단 기술이 들어간 재료를 사용해서 요즘에 지은 집이 더 내구성이 약하다. 어찌된 일일까?
왜 요즘 집은 옛날 집 보다 더 하자가 많을까?
그냥 단순하게 목조주택은 물에 약한 나무를 써서 그렇다는 식의 생각하는 기능을 상실한 듯한 단세포적인 얘기는 하지말자.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전통 한옥의 벽체에도 나무는 들어가고 더 물에 약한 짚으로 만든 새끼줄도 들어간다. 그래도, 문제가 없다. 다른 원인이 있다. 왜 그런지는 멀쩡한 전통 한옥과 문제가 생긴 목조주택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알 수가 있다. 전통 한옥엔 있는데 하자가 생긴 주택엔 없는 것이 있다. 그게 뭘까?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 배움의 지름길이다.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길 좀 해 본다. 주택 하자 문제에 대한 얘기만 하면 목조주택은 물에 약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후엔 안 맞는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콘크리트 주택을 지어야만 한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너무 단순하다. 그런 분들에겐 좀 안된 얘기이지만 내가 주택검사를 하면서 봤던 사례 중에 최악의 주택은 콘크리트 주택이었다. 아래와 같은 식의 문제가 있었다.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집이다. 주택 하자문제는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이지 주택의 형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멀쩡한 전통주택엔 있는데 하자가 생긴 목조주택의 사진엔 안 보이는 것이 있다.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기다란 지붕처마와 높은 기단부이다. 즉, 벽체가 물에 약한 재료로 되어 있어도 비를 안 맞게 하고 젖지 않도록 만들면 문제가 없다는 얘기이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계속 비를 맞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엔 없다. 물은 건축 재료를 망가뜨리고 내구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요즘 짓는 집들의 하자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퍼펙트월 개념
최근에 지어진 신도시의 단독주택 단지를 좀 돌아보면 대충 보이는 풍경들이 아래와 같다. 다양한 모양의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지붕처마는 다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 벽체가 비에 그대로 노출되어 쫄딱 맞는 형식들이다. 이미 건물의 곳곳에 빗물이 흐른 자국들이 진하게 남아있다. 이런 집들 오래오래 멀쩡하게 잘 사용할 수가 있을까?
물론 비에 그대로 노출되는 벽체 구조이긴 하지만 시공만 잘 하면 오래오래 멀쩡할 수가 있다. 문제는 그 시공을 어떻게 잘 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주택이 오래 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외피가 갖춰야만 할 기능들이 있다. 그 기능들을 알아보기 쉽게 개념화를 한 것이 북미지역 빌딩사이언스계의 구루인 조셉 스티브룩 박사의 ‘완벽한 벽체’(perfects wall) 개념이다. 그 동안 쓴 글들에서 자주 언급을 했기 때문에 이 그림을 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벽체는 기본적으로 물, 공기, 열, 습기를 관리할 수가 있는 기능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다.
퍼펙트 월 개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각 기능층의 연속성 확보
벽체가 그런 기능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는 있는 일이다. ‘퍼펙트 월’ 개념을 몰라
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한다. 정말 그럴까? 퍼펙트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하위
개념은 연속성이라는 것이다. 모든 기능층들은 서로 연결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래 그림
처럼 지붕과 벽체가 만나는 부분에선 물, 공기, 열, 습기관리층은 서로 연결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게 핵심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많은 경우 그 연속성이 제대로 시공이 되질 못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다. 아쉽지만 자
연은 사람들의 그런 변명들을 감안해서 작용하지 않는다. 자연의 힘은 그냥 늘 하던대로 무심하게 변함
없이 그리고 쉼 없이 작용을 할 따름이다. 아래의 집 현관은 지붕쪽으로 들어간 물에 의해 천정 부분이 완
전히 상했다. 현관 지붕위쪽의 물관리층이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아서 생긴 현상이다.
긴 지붕처마 같은 외부 방어선이 사라진 요즘 주택은 실수가 곧 하자
축구나 농구 같은 단체 경기를 보면 자주 듣는 말이 디펜스 라인, 즉 방어선이라는 말이다. 그런 운동경기를 싫어해도 누구나 다 아는 단어이다. 상대편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려면 방어선이 있어야만 한다. 방어선은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여러 겹의 다중 방어선이 있어야만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하다.
주택도 마찬가지로 비, 바람, 눈, 동물 등 외부 환경의 실내 침입을 막기 위해서 다양한 방어선을 만들어왔
다. 전통 한옥의 긴 지붕 처마, 높은 기단 등이 그런 방어선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지어지는 집들은 그런 것
들이 사라졌다. 방어선들이 줄어들었다. 취약해졌다. 잘못하면 한 방에 뚫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방어선이나마 더 튼튼하게 정교하게 잘 만들어야만 한다. 예전처럼 조금 실수를 해도 막아줄 다른 방어선이 없다. 여유가 없다. 실수는 곧 바로 하자문제로 이어진다. 요즘 집이 시공에 많이 까탈스러워야만 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이다. 처마가 길게 나와 있으면 물은 지붕처마 끝 부분에서 땅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벽체의 상단부와 지붕이 만나는 부분은 방수에는 신경을 덜 써도 된다. 예전에 다 그렇게 시공을 했다. 하지만, 처마가 없어진 상태에선 벽체와 지붕의 연결 부분이 누수에 가장 취약한 지점이 된다. 과거에 처마 부분이 담당을 하던 역할까지 함께 수행을 해야 만하기 때문에 시공 디테일에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누수 하자로 이어질 수가 있다.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남은 부분의 보강은 당연한 기본원리인데...
집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란 것은 한 부분에 뭔가 변화가 생기면 전체적인 기능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가 빠지면 다른 부분이 그 빈자리를 메꿔 줘야만 한다. 지붕이 짧아진 지금 그로 인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부분은 외벽이 될 수밖엔 없고, 외벽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창문과 같은 개구부들이다. 그럼 그 부분들은 과거와 같은 식으로 시공을 하면 안 된다. 더 큰 부담이 생겼기 때문에 시공방법 자체도 당연히 변화가 이뤄져야만 한다.
이미 북미지역에선 그런 변화에 맞춰서 창문 시공방식 자체도 변화해 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창문을 시공하는 개구부에 경사를 주고 백댐과 실플래슁을 설치를 하고 거기에 추가하여 테두리 부분까지 아예 방수를 하는 것이다. 주로 테이프나 액체 플래슁과 같은 재료를 이용해서 창문 개구부 주변을 아예 덮어 버린다. 그래야만 비에 더 많이 노출된 창문의 누수를 미연에 방지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택의 디자인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서 시공방식들도 변화를 해 나갈 수밖엔 없다. 그런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면 기존엔 없던 하자문제도 더 생겨날 수밖엔 없다. 최근의 주택들에 더 많은 하자가 발생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