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s Don’t Lie
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곰팡이 대폭발의 시대가 왔다"
곰팡이에게 점령당하다
아마도 내 평생 보아왔던 곰팡이보다 더 많은 곰팡이를 그 집 하나에서 다 본 것 같다. 사방이 얼마나 총천연색의 곰팡이들로 둘러싸여 있는지 언뜻 생각하면 현실세계가 아닌 멋지게 만들어진 곰팡이 놀이공원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구의 시구처럼 가까이에서 보니 더 예뻐보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곰팡이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나를 바로 잡아 정신 차리도록 해주는 것은 그 특유의 곰팡이 냄새였다. 머릿속에서 빨간색 경고등이 쉴새없이 돌아갔다. 빨리 문과 창문을 열고 탈출하라.
한 삼십분은 기침을 해댄 것 같다. 없던 천식 기운 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눈물, 콧물 다 빼고 넘어오는 헛구역질까지 가라앉히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방의 창을 다 열어 제껴놓고 환기를 한참이나 시킨 다음에야 다시 간신히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미 그 집은 사람이 추방당한 곰팡이의 점령지였다.
곰팡이는 성경책에도 관련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인류와 함께 공존을 해온 흔한 미생물이지만 요즘처럼 집에 생긴 곰팡이로 골머리를 앓는 시기는 없었던거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새로 지은 집이 거치는 통과의례, 결로 문제
요즘 겨울철이면 빠지지 않고 매년 반복되는 뉴스들이 있다. 주로 신도시에 지어진 새 아파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입주한지 얼마안된 아파트들에 생긴 결로 관련 뉴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요즘 집값이 워낙 비싸다보니 집에 대한 기대 수준도 따라 한껏 올라가 있다. 그런 높아진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새 집의 유치랑과 그 아래 벽을 더럽히는 결로는 용서할 수가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민들의 불만에 방송사들의 추임새까지 더해지면 그런 집을 지은 건설사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집도 제대로 짓지 않은 탐욕스러운 존재로 취급된다.
하지만, 뉴스의 자극적인 보도내용과는 달리 새 아파트 유리창에 생기는 결로는 건설사들의 탐욕 때문에 생긴 부실공사에 기인하기 보단 새 아파트들의 기밀성이 좋기 때문에 생겨난다.
입주한지 얼마 안된 새 아파트에 결로와 곰팡이가 많이 피는 것은 신축 후 1~2년간은 콘크리트와 같은 건축 재료에 포함된 건축습기에다가 생활습기까지 합쳐지다 보니 실내 습도가 높아진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요즘 지어진 아파트의 기밀성이 높아 그 많은 습기들이 제대로 배출이 되지 못하고 비닐하우스 같은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기밀성에 대해선 인하대에서 송도에 지어진 아파트들을 대상으로 기밀성 테스트를 했던 기록이 있다. 국내에선 주택의 기밀성에 대한 기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들의 기밀성 수준은 미국에서 2012년부터 적용된 IECC의 기준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수준이다. 신축되는 단독주택도 기밀성 수준은 무척 높아지고 있다.
결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곰팡이 때문
사실 엄밀하게 따져보면 결로 자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로가 생겨도 건조만 빨리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건조가 늦어지면서 곰팡이를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미관상으로도 좋지는 않지만, 그 보다는 건축 재료의 성질을 변하게 만들고 실내 공기의 질을 오염시켜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수도 있다.
곰팡이가 자라기 위해선 4가지 요소가 작용해야만 한다. 곰팡이 포자, 영양분, 적절한 온도, 그리고 습기이다. 곰팡이 포자는 어느 곳이든 그 곳에 있는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다. 영양분이 되는 유기물질은 집을 짓는 대부분의 건축 재료들에 들어있다. 온도 또한 곰팡이나 사람이나 비슷한 온도를 좋아한다. 그러니, 곰팡이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내의 습도를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집들은 실내에서 발생되는 습기의 양도 많고 집도 기밀하게 기어지기 때문에 결로와 곰팡이가 더 많이 생겨난다. 결로는 실내표면이나 벽체 속 등에 습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 곰팡이를 피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결로와 곰팡이가 발생하지 않는 거절한 실내 습도는 국내에선 통상 40~60% 수준을 이야기하며, 미국은 울이보다 좀 낮은 30~50%수준의 습도를 유지할 것을 권장한다.
곰팡이 대폭발의 시대가 왔다
과거 시대에 살던 곰팡이들은 배가 고팠다. 먹을것이 없었다. 집은 통나무와 흙으로만 지어져있었고 변변한 창이나 문 같은 것도 없이 출입문 역할을 하는 곳이 휑하니 뚫려있었다. 게다가 집안에 피우는 모닥불의 연기가 나가도록 지붕 위쪽엔 구멍도 나있곤 했다. 그러니 곰팡이가 자랄만한 환경자체가 조성되질 않았다. 기껏 곰팡이를 피울 수 있는 곳들은 오랫동안 빨거나 건조시키지 않은 옷가지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옛날 어머니들은 봄만 되면 장롱안의 옷들을 모두 꺼내 빨래하고 말리는 봄맞이 대청소를 해왔던 것이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곰팡이들의 천국이다. 모든 주거조건이 곰팡이들이 살기에 좋도록 변해왔다. 인간이 지구를 정복했다면, 곰팡이는 주택을 정복했다. 현대의 주택은 인간이 살기에 쾌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곰팡이들이 살기에도 쾌적하다. 주택 하자 문제와 관리부실로 약간의 습도 조건만 맞아 준다면 바로 곰팡이들의 나라가 조성이 되는 조건을 갖추었다.
과거와 달리 가장 좋아진 것은 바로 먹이 부분이다. 요즘 집안에 들어가는 인테리어 자재들은 대부분이 나무를 잘게 쪼개고 갈아서 만든 파티클 보드, MDF와 같은 것들이다. 벽지를 만들기 위해선 나무를 갈고 갈고 만든 펄프가 필요하다. 아마 통나무와 같은 원래죠만 있었다면 곰팡이들도 그리 쉽게 생겨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종이, MDF와 같은 건축 재료들은 곰팡이들에겐 이유식과도 같은 것이다. 버섯을 속성으로 재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톱밥배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약간의 습기만 공급이 되면 집안의 모든 곳은 바로 곰팡이 배양을 위한 배지가 되어 버린다. 결로가 그 습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높아진 기밀성은 집안을 비닐하우스로 만든 곰팡이 배양 장처럼 만들어버린다.
집값은 곰팡이가 좌우한다
미래학자들은 사회의 흐름, 환경의 변화 등을 연구하여 앞으로 일어날 세상에 대한 힌트를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미래학자들이 주택의 곰팡이 문제에 주목을 하고 있다. 2년 전 조선비즈에 연재되었던 2026년 미래일기 중 세 번째 이야기가 미래의 집값은 곰팡이가 좌우한다는 것이다. 발달하는 사물 인터넷 기술이 부동산과 결합하게 되면 집안 곳곳에 설치된 측정센서들에서 측정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게 되는 시대가 곧 올것이라 예상된다. 그럴 경우 그 집에 곰팡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부분이 집값을 좌우하는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부들은 곰팡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곰팡이가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되면, 아마도 주택 하자에 대한 정의도 달라질 것이다. 왜냐면 직접적인 재산상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때엔 지금과 같은 주택의 구조적, 기능적 결함이나 품질 문제로 다소 모호하게 여겨지던 하자의 개념에서 더 구체화 되어 결로와 곰팡이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곧 건축하자로 여겨지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집이 변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결로와 곰팡이 문제가 있다. 작금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주택문제는 곰팡이 문제로 연결이 된다. ASTM에선 이미 70년대에 주택 문제의 90%는 습기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발표를 했다. 습기 문제는 곧 곰팡이 문제를 의미한다. 결로와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집을 짓는 것이 건축업계에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중에 하나이다. 미국과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에선 결로 없는 집을 짓기 위한 표준이나 인중제도와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활용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연구와 준비가 시급하다.
l 글·사진 김정희 소장
전직 빌더 출신으로 빌딩 사이언스 탐구에 뜻을 두고 2016년 BSI건축과학연구소를 설립한 후 주택하자 문제 연구와 주택 검사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홈인스펙터다.
BSI 건축과학연구소 | 김정희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