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을 읽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공간을 만나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
예전에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찾아가던 책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는 시간대에는 사람이 적어 마치 혼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듯 한 기분으로 휴식을 즐겼습니다. 이곳에 앉아 여러 생각들을 정리한 덕분에 제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아 약속이 있다 말하고 홀연히 책방으로 향하던 시절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이라는 책은 취업난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작은 반란을 그린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정규직 도전에 실패하면서 원치 않는 일들을 남의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남자의 대담한 행동들을 인상 깊게 느끼고 자신 또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단지 뒤쪽엔 작은 산책로가 나 있는데, 길을 따라 걷다보면 둥근 공터가 나온다. 그 위로는 돌계단이 무대를 내려다보듯 반원으로 펼쳐져 있다. 잘만 활용하면 소극장 공연도 가능할 것 같은데 쓸모없는 공터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나보다. (중략) 정진 씨를 만들어낸 건, 이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하나의 숨통을 마련하기 위해서 였을 뿐이다.
<서른의 반격>, p.34~35
작품 속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심 속에서 별 볼일 없다고 생각되는 공터에 자리를 잡고 ‘정진’이라는 가상의 연인을 만들어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곳으로 도망친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은 점점 쌓여만 갑니다. 여기에서 직장에 갑작스레 등장한 신기한 인물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변하고 혼자 있던 공터 또한 새롭게 그려집니다.
”가짜죠?”
고객 들자 규옥이 서 있다. 미소를 짓고 있는데 어째 맘에 들지 않는 미소다.(중략)
“혼자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정말 정진 씨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겠네요.
그럼 혼자 있어요,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규옥은 내 옆에 털썩 앉더니 휴대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내귀에 꽂았다.
<서른의 반격>, p.134~135
주인공은 항상 혼자 있던 공터에서 자신의 옆자리를 조금씩 누군가에게 내어주기 시작합니다. 결국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만나게 된 인물들 덕분에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 주인공은 공터와 가상의 인물을 타인에게 소개하면서 이제는 혼자만의 공터가 아닌 주변인들과 공유하는 선택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팀장님한테 보여드릴 게 있어요, 고백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중략)
나는 구석에 놓인 텅 빈 벤치를 가리켰다.
“소개할게요. 정진 씨에요.”(중략)
우리는 웃었고 나는 정진 씨의 탄생에 대해서 솔직히 들려주었다. 더 이상 함께할 이유가 없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처음 서로를 조금쯤 이해했다.
<서른의 반격>, p.220~221
주인공의 공터는 처음엔 숨을 쉬기 위해, 서서 버티기 위해 존재했던 공간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자신 만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작은 용기들이 모여 나아간 곳에서 만난 현실의 인물들 덕분에 공터는 공유를 넘어 자랑스러운 새로운 자신을 탄생시킨 시작점으로 소개됩니다.
공간은 인간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인상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곳으로 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도 값진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이런 공간들이 한국의 곳곳에 더 많이 만들어진다면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