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꼬마 백만장자 삐삐>를 읽고,
엉뚱함에서 새로운 공간을 찾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
어릴 적, 의자나 건조대 위에 이불을 덮어 비밀기지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 인형과 과자, 장난감들을 넣어 놓고 자신만의 세상을 펼쳐봅니다. 그곳은 정글 한가운데 일수도 있고 무인도에 갇혀 조난당한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상들을 하며 지냈던 책방지기는 어른이 되어 시골에서 작은 책방을 열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말괄량이 삐삐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큰 사랑을 받으며 수십 년 동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장난꾸러기 친구 삐삐는 부모님 없이 혼자 뒤죽박죽 별장에서 지냅니다. 마당은 정리되어 있지 않아 풀이 무성하고, 보수되지 않은 지붕에서는 기와가 떨어지려고 합니다. 창문은 망가져 테이프로 붙여놓은 듯합니다. 그곳에는 부모님 대신 말과 원숭이가 살고 삐삐는 혼자서 자장가를 부르며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뒤죽박죽 별장 속에서 삐삐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우리가 예전에 만들었던 상상속의 공간들과 비슷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짓말 같은 모험이 별장에 담겨 아이들을 설레게 하고 어른들의 요리조리 피해 집을 지켜내는 삐삐의 모습에서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삐삐의 엉뚱한 상상들은 주변의 아이들까지도 가능성을 믿고 더욱 멋진 생각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주기까지 합니다.
책방지기가 열심히 가꾸고 있는 오월의푸른하늘 책방도 삐삐와 같은 엉뚱한 아이디어들이 쌓고 쌓여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외양간을 책방을 만들면 어떨까? 창고를 털어서 책장을 잔뜩 만들어보면 어떨까? 사람들이 책을 어디서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작은 집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책방을 탐험하게 만들면 어떨까?
비록 이런 상상들은 효율적이지 못하더라도 오월의푸른하늘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의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다가갔고 누구도 감히 따라하지 못하는 독보적인 공간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책방을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작지만 엉뚱한 아이디어들 덕분입니다. 조금 이상한 책방을 재밌게 이용해주시고 엉뚱한 생각 하나를 놓고 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작은 엉뚱함들을 잘 섞어 새로운 공간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엉뚱한 상상에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삐삐가 지내는 뒤죽박죽 별장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지금의 건축을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삐삐가 하는 엉뚱한 이야기들은 현실이라는 세상에 작은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 재미들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실존하는 무언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허황된 것들 사이에 현실이 되는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말하고 찾고 상상하고 그려내면서 뒤죽박죽 별장을 더욱 크게 만들어 보고 싶어집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집의 형태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니즈에 맞춰 나갈 수 있으려면 집을 바라는 사람들보다 한발 더 앞서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끊임없이 엉뚱함을 생산해내는 힘이 필요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린드그랜 작가의 삐삐 이야기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눈앞의 것에만 몰두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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