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 ‘열역학’ 점심은 없다.

세상에 공짜 ‘열역학’ 점심은 없다

 

김정희 BSI 건축과학연구소장

전직 빌더 출신으로 빌딩 사이언스 탐구에 뜻을 두고 2016년 BSI건축과학연구소를 설립한 후, 주택하자 문제 연구와 주택 검사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홈인스펙터다.

글·사진제공_ BSI 건축과학연구소 김정희 소장

 

‘공짜 점심은 없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노벨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그의 책 제목으로 쓰면서 부터이다. 원래 이 말의 유래는 1900년대 초 미국의 술집들이 술을 사면 무료로 점심을 제공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때 제공된 점심들이 주로 많이 짠 것들이어서 사람들은 술을 더 많이 사먹을 수밖엔 없었기 때문에 결국 공짜란 없다는 의미로 사용이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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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빌딩사이언스계를 이끄는 인물 중 대표적 인물인 BSC (Building Science Cooperation)의 조 스티브룩 박사는 이 말을 응용해서 ‘세상엔 공짜 열역학 점심은 없다.’ 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여기서 열역학이란 ‘열역학의 제2법칙’을 얘기한다. 이 법칙에 대해 여러 설명이 있지만 건축 관련 가장 단순 명확한 것은 에너지의 흐름엔 방향이 있고 그 반대 방향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스티브룩 박사는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는 식으로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한다. 열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기, 수증기, 압력 등 주택에 작용하는 힘들은 모든 같은 원칙들이 적용이 된다. 주택 기능의 이해, 빌딩사이언스의 이해를 위해선 기본적으로 알아 두어야만할 내용이다.

그럼 스티브룩 박사가 얘기하는 열역학의 공짜 점심이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주택들이 점차 고기밀 고단열화 되어 가면서 얻는 편안함과 에너지 절감 효과 같은 것들을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당연시되고 또 추구해야만 할 것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생겨나는 피할 수 없는 반대급부, 즉 우리가 치러야만 할 대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그의 얘기는 우리가 건물의 에너지 흐름에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얻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 주의해야만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을 하는 말이다. 세상에 마냥 좋기 만한 것이란 없다. 밝은 부분이 있다면 어두운 부분도 있다.


주택의 단열성,

기밀성이 높아지면서얻은 것과 잃은 것들

건축의 역사는 실패와 개선의 역사이다. 건축규정이 생겨난 이유가 경험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지난 실패의 과정을 살펴보면 교훈을 얻을 수가 있고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가 있다. 이미 북미지역에선 단열과 기밀이 강조되면서 발생했던 많은 하자문제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살펴보고 회피하거나 경감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 가는 것이 건축계에서 일하는 우리들이 해야만 할 일이다.

열역학 제 2법칙에서 얘기하듯이 열은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고, 수분도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른다. 우리가 젖은 손으로 마른 휴지를 만지면 휴지가 젖은 이유이다. 그리고 젖었던 휴지를 그대로 두면 다시 마르는 것도 주변의 열과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그 얘긴 젖었던 것이 다시 마르기 위해선 열과 공기의 흐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자연현상 이야기이다.

그 법칙이 건축에는 이런 식으로 적용이 된다.

옛날 집들은 많이 허술하게 지어졌다. 그래도 별 문제가 없었다. 왜냐면 허술해서 단열도 잘 안되었고 틈새가 많았기 때문에 실내의 열과 공기가 잘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빠져 나가는 열과 공기들은 벽체와 지붕 재료들을 데웠기 때문에 혹시라도 젖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빠르게 건조가 되었다. 뭐든 건조된 것들은 오래 보존이 된다. 멸치를 왜 말리는지, 미이라가 왜 이집트에 넘쳐나는지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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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이 넘은 구옥의 지붕밑 부분이다. 누수가 되는 곳이 있지만 워낙 건조성이 좋아서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다.

하지만, 허술했던 옛날 집들은 춥고 건조하고 불편했다.

에너지의 낭비도 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열재를 만들고, 합판을 만들고, 벽지를 만들고 시공법을 바꿔가면서 개선을 했다. 실내의 따뜻한 공기를 좀 더 오래 붙잡아 두는 쪽으로 건축기술들이 발전을 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곧 주택에서의 에너지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실내가 따뜻해지는 만큼 지붕과 벽체들은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이다. 열과 공기의 흐름이 줄어들고 차가워진다는 것은 젖어도 잘 마르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젖어도 잘 마르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습기와 곰팡이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요즘 집들이 더 잘 지어졌음에도 결로, 곰팡이 문제가 많아지고 있는 이유이다.


패시브건축에서 결로와 곰팡이 문제를

강조하는 이유

패시브주택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용어이다.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소가 1990년대초부터 보급해온 고단열 고기밀주택 이름이다. 국내엔 주로 에너지효율을 극대화한 건축방식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의 연구소에서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주제는 단열이나 기밀성을 높이는 시공방법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단열과 기밀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더 많이 한다. 이유는 독일 사람들도 세상에 공짜 열역학 점심은 없다는 것을 오랜 연구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패시브주택을 연구하는 하던 사람들이 초기에 직면한 부작용이 바로 습기문제였다. 기존 주택에 단열을 추가했더니 표면에 생기는 결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벽체 속에 생기는 내부 결로 문제로 전환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예전엔 눈에 보이던 문제가 이젠 눈에 보이지 않고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프라운호퍼연구소 사람들도 무작정 단열과 기밀성만 높이라고 얘기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문제가 없이 고단열 고기밀을 추구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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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운호퍼연구소 세미나자료 중

독일 사람들이 결로와 곰팡이 문제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은 프라운호퍼연구소에서 만들어내서 보급하고 있는 WUFI라는 건축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이 프로그램의 사용목적은 만들고자 하는 벽체의 구성이 결로와 곰팡이를 유발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 얘긴 고단열 고기밀 주택이 반드시 치러야만 할 점심 값은 결로와 곰팡이 등의 습기문제에 대한 대책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간과되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실내 공기의 질 문제

집은 시스템이다. 집의 각 부분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 없이 고단열이나 고기밀만을 추구하는 것은 예기치 못한 또 다른 문제들을 유발할 수가 있다. 스티브룩 박사는 이런 얘길 한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의 섬뜩한 얘기 속엔 과거 캐나다 정부에서 추진했던 주택 에너지절약 프로그램 때문에 발생했던 일산화탄소 가스중독 사망사고라는 뼈아픈 경험이 배경에 깔려있다. 고단열의 추구는 고기밀이 동반되어야만 하며 고기밀은 실내 공기의 질과 안전 문제로 또 연결이 될 수밖엔 없다.

국내에서 고단열 고기밀 주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실내 공기의 질 문제이다. 관련된 국내 연구가 워낙 많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다. 기밀성이 높은 집들은 자연적인 공기의 순환이 이뤄지질 않는다. 때문에 기계식 환기장치들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낮선 장치들이다.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 단순히 전열교환기 하나 설치하는 것으로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기계식 환기장치를 사용하게 되면 실내 공기의 압력에 변화가 생긴다.

우리가 잘 모르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다. 과거의 집들은 따뜻한 공기가 위로 올라가서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아래 쪽에선 외부의 공기가 들어오는 자연적인 공기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공기의 순환이 이뤄지질 못한다. 대신에 주방후드, 욕실 환풍기, 전열교환기 등의 기계 장치들이 사용되면서 생기는 인위적인 공기의 순환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용량이 큰 주방 후드를 사용하게 되면 급격한 실내 공기의 감압현상이 발생한다.

실내가 감압이 되면 어디든 취약한 부분에선 실내로 공기가 유입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안 좋은 것이 보일러의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되는 것이다. 보일러의 배기용 송풍기는 용량이 작기 때문에 주방 후드의 힘을 이기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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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즈의 관련기사 중에서

또 실내와 연결된 차고가 있다면 차량의 배기가스가 실내로 또 유입이 될 수가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자주 생기는 일산화탄소 중독 사망사고들이 주로 그런 이유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고유형이 차고에 세워 둔 시동을 끄지 않은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기밀 주택의 경우엔 보일러실이나 차고 같은 유해 연소가스가 생기는 곳들은 실내 쪽 공간과는 연결되지 않도록 끊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편의성보다는 안전이 우선 되어야만 한다.


맹목적인 고단열 추구보다는

먼저 우선순위 정립이 중요

북미의 빌딩사이언스계에 이런 우스개 소리같은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1940년대 캐나다의 한 연구소에서 장기실험을 하던 과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연구소에 가서 온도와 습도를 측정해야 했다. 몇 달간 꾸준히 실험을 했는데, 어느 날 몹시 추운 겨울 아침에 일이 생겼다. 너무 추워서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난감하던 차에 이웃집에 사는 나이 든 원주민에게 도움을 청했다. 원주민은 흔쾌히 말이 끄는 큰 눈썰매를 가져와 과학자를 태워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눈썰매를 끌고 온 원주민은 함께 가지고 온 들소가죽망토를 건네주며 과학자에게 입으라고 했다. 과학자는 가죽망토의 털 부분을 안쪽으로 입었지만, 원주민은 털이 밖으로 나오게 입고 있었다. 과학자는 원주민에게 털 부분이 안으로 가게 입는 게 더 따뜻하다고 말했지만, 원주민은 들은 체도 안했다는 것이다.

한참을 더 가다가 과학자는 따지듯이 다시 물었다.

 

‘왜 더 따뜻한 방식으로 입지 않나요?’

그러자 늙은 원주민이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버팔로들이 바보짓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 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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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핵심은 버팔로의 생존에는 보온보다 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주택 건축엔 단열보다 더 중요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집을 짓는 가장 큰 목적은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이다. 그 다음엔 주택의 내구성, 편안함과 쾌적성 같은 요소들이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 단열과 에너지의 절약은 그 다음 문제이다. 그 우선순위를 잊어버리거나 뒤집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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