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집이 숨을 쉰다는 논쟁에 대하여
김정희 BSI 건축과학연구소장
전직 빌더 출신으로 빌딩 사이언스 탐구에 뜻을 두고 2016년 BSI건축과학연구소를 설립한 후, 주택하자 문제 연구와 주택 검사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홈인스펙터다.
글·사진제공_ BSI 건축과학연구소 김정희 소장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원주택 건축과 관련된 인터넷 카페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논쟁이 집이 숨을 쉬느냐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집은 숨을 쉬어야만 한다고 얘길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집은 숨을 쉬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다.
지금은 그런 논쟁들이 많이 정리가 되었는데, 사실 그 논쟁은 ‘어떤 집이 더 좋아요’와 같은 성격의 선호도에 관련된 주제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건축 관련 정보가 적을 때는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건 좋고 이건 나쁘고 하는 식의 이분법적인 생각들을 가졌지만, 지금은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세상이다 보니 어떤 건축방식이던지 그 장단점을 알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생각들이 변화가 되어 가는 것이다.
사실 숨 쉬는 집 논쟁과 같은 건축 관련 이슈들이 발생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과거엔 없던 뭔가 새로운 건축의 방식이나 조류가 등장을 하면서 기존 방식에 변화를 요구하던 시기였다.
숨 쉬는 집에 대한 논쟁도 그전에 짓던 집과는 다른 집들, 그러니까 단열성과 기밀성이 강조가 되는 집들이 등장을 하면서 예전 방식을 고수하던 사람들과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려는 사람들 간의 의견 차이가 그런 식의 논쟁으로 표출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즉, “숨 쉬는 집 vs. 숨 쉬면 안 되는 집” 논쟁은 전통적인 건축 방식과 현대적인 고기밀·고단열 건축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 방식의 변화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집이 숨을 쉰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집은 생물이 아니므로 진짜로 숨을 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집에서 이루어지는 공기와 습기의 흐름이 마치 호흡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집이 숨을 쉰다는 말은 여러 가지 작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은 공기가 통한다는 의미다.
주택에는 다양한 틈새들이 있고 그 부분으로 실내외 공기들이 유출입 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수증기가 이동한다는 것이다.
수증기는 공기 이동, 건축 재료의 확산과 조습 작용 등을 통해서 실내외에서 움직이고 순환이 된다. 보통 나무와 흙이 숨을 쉰다고 말하는 것이 이 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는 실내 공기흐름 부분이다.
실내에선 자연적으로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공기의 흐름이 발생을 하며, 이때 공기의 유출입도 함께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집을 지을 때 만드는 레인스크린 시스템과 지붕 벤트 시스템이 있다.
이런 시스템들은 벽체와 지붕으로 습기와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 쾌적하고 내구성은 좋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즉, ‘집이 숨을 쉰다’는 말에는 공기와 습기의 이동, 실내 공기 흐름, 벽과 지붕의 환기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포함된다. 단순히 틈새바람이 들어오는 것만이 아니라, 주택이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요소들을 설명하는 표현인 것이다.
전통건축 방식에선 집이 숨을 쉰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워
원래 “집이 숨을 쉰다(The house needs to breathe)”는 말은 앞서 설명을 했듯이 주로 단열성과 기밀성이 낮은 전통 건축방식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적인 환기, 습기 조절과 관련이 있다. 예전 집들은 지금과 같은 고단열, 고기밀 시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기계식 환기 시스템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신, 대부분의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건물 자체가 수많은 틈새들을 통해서 자연적으로 공기를 순환시키고, 습기를 흡수·배출하는 조습작용 등으로 실내 환경을 조절했다.
또 천연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노출된 재료가 젖지 않게 보호하는 형태로 지어졌고, 또 자연스럽게 흐르는 공기와 외부로 유출되는 열 등으로 인해 젖어도 금방 마르는 방식으로 건축물의 내구성 자체가 유지가 되었다.
예컨대 전통 한옥의 경우 높은 기단, 긴 처마 등으로 물에 취약한 재료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보호가 되었고, 앞 뒤 그리고 바닥이 트인 대청마루와 같은 공간, 투습성이 높은 한지가 붙은 기밀성이 낮은 문과 창, 실내 도배지, 그리고 지붕과 벽에 주로 사용된 흙과 나무 등을 활용하여 공기와 습기가 순환되고 배출이 되는 방식이었다.
서구의 석조나 벽돌 건축물들도 바람 잘 통하는 작은 창들과 그대로 외부에 노출된 건축재료, 많이 두꺼운 벽체가 빗물과 습기를 서서히 흡수했다가 배출하는 방식으로 실내 습도를 조절했다. 이러한 방식에서는 건물이 자연적으로 ‘숨을 쉬는 것’ 처럼 보였으며, ‘숨 쉬는 집’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집이 숨을 쉬면 안 된다’는 말은 왜 나왔을까?
하지만, 그런 전통 건축 방식에 급격한 변화가 요구되는 사건이 발생을 했는데 그게 바로 70년대의 오일 파동이다. 그 당시 급작스러운 석유 가격 급등에 따라서 그 동안 관심이 적었던 주택의 에너지 효율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단열재와 기밀 시공이 정부 주도로 강조되기 시작을 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선 집을 꽁꽁 싸매 열 손실을 줄여야만 했고, 때문에 건물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더욱 단열성이 높게 지어지는 방향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단열의 달성은 당연히 고기밀을 수반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집이 숨을 쉬면 안 된다는 말들이 생겨난 것이다. 대신에 숨을 쉬는 것은 기계식 환기장치의 역할이 되었다.
정책적으로 보면 전통적인 건축방식에서 새로운 건축방식으로 전환을 이루어야만 했기 때문에, 집이 숨을 쉰다는 말은 극복을 해야만 할 말이 된 것이다.
하지만 고단열 고기밀 주택으로의 급격한 변화는 전통적인 방식들이 가지고 있던 주택의 자연스러운 환기를 통한 습기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게 되고 그로 인해서 내부 결로 문제와 곰팡이의 폭발, 실내 공기의 질 악화 문제 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거기엔 고기밀 주택엔 적절한 기계식 환기 시스템이 필수적으로 설치되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부족도 함께 작용을 하였다.
그렇게 나타난 문제점들에 대해서 일부 건축가와 시공자들이 이를 ‘집이 숨을 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숨 쉬는 집과 집이 숨을 쉬면 안 된다는 논쟁이 촉발되고 격화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선
숨 쉬는 집에 대한 개념 재정립이 필요
단순한 소모적인 논쟁을 벗어나 주택 건축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려면 요즘 지어지는 고기밀 고단열 주택의 건축에서도 전통건축에 적용이 되었던 ‘집이 숨을 쉰다’는 개념이 배제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지금의 집들은 전통적인 건축 방식과 현대적인 고단열, 고기밀 시공 방식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다. 다만, 과거처럼 자연적으로 집이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계획된 공기와 습기의 조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과거의 방식이 통제되지 않은 공기와 습기의 흐름이었다면, 지금의 건축에서는 컨트롤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 기계 환기와 습기조절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때문에 예전에 없던 전열교환기나 제습기 등의 장치가 필요해졌고, 레인스크린 시스템과 지붕벤트 시스템 등이 필수적인 요소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이 숨을 쉰다는 것은 예전 전통적인 건축방식이나 지금의 건축방식이나 근본적인 개념들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건축방식은 자연에 그 역할을 맡겼다면 지금의 건축방식은 사람이 기계적인 장치들을 이용하여 계획된 방식으로 실내의 공기와 습기를 조절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현대 건축에서 필요한 것은 “숨 쉬는 집(Breathable House)”이라는 말 보다는, “올바르게 환기되고 습기를 조절할 수가 있는 집”이라는 것이다.
즉, ‘집이 숨을 쉬어야 한다’는 개념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집이 숨을 쉬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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