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인이 본 핀란드 건축
글·사진제공_유블로 / 브이에스에이코리아 김나리 대표
연재순서
1. 유블로 해외 진출
2. 한국 건축인이 본 핀란드 건축
3. 한국 건축인이 본 핀란드 창호
4. 유럽 창호 성능 시험기 1 : 기준 및 시험소 및 제작소 선정
5. 유럽 창호 성능 시험기 2 : 시험 진행 및 결과
왜 핀란드인가?
핀란드는 인구 육백만 명의 작은 나라이다. 시장도 작은 나라에 왜 수출하러 가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우리가 핀란드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핀란드는 작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이며, 수준 높은 교육으로 양질의 노동력, 고도의 디지털화, 값싼 전기와 안정된 사회 시스템이라는 장점을 바탕으로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교두보 시장으로 선택하는 나라이다.
유블로는 건물의 냉난방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자재를 간소화하는 저탄소 디자인 창호이기에 에너지 효율이 중요한 춥거나 더운 극한 기후에 더 적합하다. 또한 간결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소비자가 있는 곳이라면 완벽한 목표 시장이 된다.
지난 수백 년의 주요한 창호 기술이 유럽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후, 디자인, 친환경 가치를 중요시하는 북유럽은 유블로의 최고의 시장이다.
기후와 지형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의 가장 큰 기후적 특징은 높은 위도에 따른 일광시간 변화이다. 헬싱키 기준 여름은 19시간 해가 떠있는 백야가 생기고 겨울은 하루 일광 시간이 6시간도 채 되지 않는 나날들이 지속된다. 길고 춥고 어두운 겨울을 보내야하는 핀란드(북유럽)에서 사우나와 인테리어 디자인은 자연스레 발전했다. 핀란드는 빙하가 깎아 만든 편평한 땅에 빙하가 지나가 만든 19만개의 호수가 있다.
대부분의 호수의 물은 1급 청정수로 식수가 될 만큼 맑다.
청정한 숲과 호수는 핀란드의 강력한 정체성이며 자부심이며 핀란드인이 자연과 환경을 존중하고 환경 친화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 아름다운 호수 혹은 바닷가에서의 사우나는 추위를 이기는 동시에 자연 냉수욕과 함께 신체와 정신 건강에도 유익한 핀란드의 중요한 문화생활이다.
또한 어둡고 추운 겨울은 자연스레 실내 활동 시간을 늘린다. 이런 기후적 특성은 북유럽에서 인테리어 디자인(특히 조명과 가구)을 중시하고, 그 산업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회 역사적 특징
핀란드는 약 700년간 스웨덴, 100여 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 1917년 독립한 젊은 국가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러시아와 스웨덴과 맞닿아 있어 여러 사회-문화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오랜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한 나라이기 때문인지 핀란드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진보적이고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라고 평가받으며, 다른 유럽국들에 비해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이 적다. 핀란드의 성평등, 사회복지 시스템, 소수자 권리와 다양성 존중, 노동 환경, 치안은 매우 수준 높다.
핀란드인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이라는 통계를 여러번 본 적 있다. 핀란드는 내 경험상 기후적으로 살기 좋은나라도 아니고, 인프라적으로도 살기 편한 나라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장 행복한 국민이 되는 비결은 한 명 한 명의 구성원이 각자 속한 사회(가정, 일터, 학교 등)에서 남 보기에 대단한 성공이나 성취가 아닐지라도 하루하루 만족하며 매일의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핀란드의 성공은 구성원이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구축한 점에 있다.
디자인적 특징
핀란드에 가기 전까지 북유럽국과 스칸디나비아국의 차이도 알지 못해 핀란드를 스칸디비아국이라고 말하는 실례를 하기도 했다. 스칸디나비아국(Scandinavian countries)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3국을 지칭한다. 북유럽국(Nordic countries)은 스칸디나비아 3국에 핀란드, 아이슬란드를 합한 5개국을 지칭한다. 이제까지 막연하게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스타일을 알고 있었지만 각각의 디자인 특징을 파악하지는 못했는데, 핀란드에서 지내는 동안 핀란드의 특징은 조금 알게 되었다.
핀란드는 북유럽 국들 중에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어떻게 보면 “소소하고 밋밋한” 최소한의 디자인을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색감도 화려하고 눈에 띄는 디자인이 많은 덴마크 디자인과 대비를 이루는 것 같다. 오랫동안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함을 주는 간결한 디자인이 내가 느낀 핀란드 디자인 스타일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오래 쓸 수 있는 탄소발자국이 적은 재료와 공법이 필요한 우리에게 필요한 디자인 정신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핀란드 건축: 재료가 주는 디자인의 힘
핀란드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풍경에서 그 디자인 수준이 깜짝 놀랄 정도로 높아 놀라웠다. 도시를 이루는 경관 디자인, 건축, 인테리어, 가구, 조명, 생활 소품, 텍스타일, 핸드폰으로 매일 보는 웹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핀란드에서 접하는 디자인은 깔끔하게 정제되어 군더더기가 없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아는 건축 디자인을 매일 살펴보며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해 보았다. 도시에는 지역에 따라 화려하고 디자인이 뛰어난 지역과 건물도 있지만 낙후되고 허접한 지역과 공간도 있기 마련인데, 어디를 가도 변변치 않는 느낌을 주는 싸구려 공간이 없었다.
확실히 내가 주로 지낸 헬싱키는 20세기 이후 모든 건물이 지어진 유럽 기준에서는 매우 나이가 어린 도시이다. 하지만 그런 기준으로는 서울도 대부분의 건물이 20세기 이후 진 것은 마찬가지 일텐데…
그냥 이 나라의 돈이 많아서일까? 찬찬히 건물을 보면 분명 오십 년도 넘은 오래된 건물도 많고 건물의 많은 요소들이 낡은 부분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낡아도 허접해 보이지 않았다. 허접해 보이는 것들은 쉽게 노후화하는 재료로, 쉽게 노후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공한 공간일텐데 헬싱키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튼튼한 재료로 추위나 눈비에 매우 견고한 방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본 어떤 나라 보다 창호 플래싱(flashing)마감에 진심이어서 건물 창호 하나하나 꼼꼼히 시공된 튼튼한 금속 플래싱을 보면 괜히 내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다.
또 내가 가본 어떤 나라보다 석유화합물 재료를 내외장재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희귀한 나라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빠른 성장으로 대량 생산된 고층 건물이 많으며, 내장재는 가볍고 설치가 용이한 플라스틱 마감재가 주를 이룬다.
그에 반해 핀란드는 나무가 많아 내외장재로 목재 사용이 많고, 석재, 금속, 유리, 콘크리트, 텍스타일이 건축 마감재의 주를 이룬다.
낡아도 오래도록 쓸 수 있는 안정감 있는 재료가 실내 공간에 주는 영향은 엄청 나다. 내부 마감재는 우리의 시각 뿐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을 통해 공간감을 형성한다. 목재와 텍스타일로 내부 마감을 한 공간에서는 소리가 마감재에 흡수되어 콘크리트, 타일, 유리, 금속 같은 반사재가 많이 쓰인 공간에 비해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마감재가 풍기는 냄새, 만지거나 그 위를 걸었을 때 느껴지는 소리와 촉감, 이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모여 공간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 더 빨리, 더 싸게’라는 한국의 건축 현실에서 벗어나 핀란드가 내게 준 건축적 교훈은, 건축을 할 때 ‘천천히’,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귀한 재료로 간결하고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핀란드의 묵묵한 자세다.
여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헬싱키와 같은 유럽 도시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이며, 헬싱키에서의 내 활동 반경이 한정되어 있어 낙후된 지역이나 공간이 존재하나 내가 몰랐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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