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현, 김연수의 <떼루아의 맛>를 읽고 집의 떼루아를 생각하다.

'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신이현, 김연수의 <떼루아의 맛>를 읽고

집의 떼루아를 생각하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

 

우연히 친구를 따라 일본의 한 해변가 마을을 거닐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다 내음이 잔잔하게 코 끝에 맴돌며 기러기들은 하늘 위에 수놓은 것처럼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함께 둑 위를 걷다 보니 입에서 저절로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어려운 일상이 기다릴 것이 당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장 바라는 것들이 모두 모인 그런 동네였습니다.

어딘가를 지날 때, 집을 짓고 살아가고 싶은 장소를 만나보신 적이 있을까요? 저는 그때 그 해변가를 떠올리면 지어지지도 않은 저만의 바닷가 집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그 안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 제 자신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간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지극정성으로 가꾸어 나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아직까지도 머릿속에만 집이 있지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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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떼루아의 맛>은 그래픽노블로 쉽게 읽어 보실 수 있는 책입니다. 프랑스 남편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들어와 수안보면에 정착해 와인 밭을 가꿔 나가는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와인을 만들고 싶어 하는 남편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장 적합한 땅을 찾는 것이 시작이었지만 먼 곳에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찾아온 만큼 제대로 정착하고픈 부부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와인은 땅의 정기와 태양의 은혜를 받아 만들어지는 귀중한 음식 중 하나입니다. 땅의 정기를 사용하는 만큼 환경을 헤치지 않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실천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가까워지려는 부부의 노력은 장소(공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번거롭고 불편한 과정들이 쌓이면서 매년 달라지는 농장의 모습도 신비롭지만 이를 가꿔가는 부부의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농장과 연관되어 함께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또 하나의 집 또는 고향처럼 다가옵니다.

‘떼루아’는 프랑스어로 토양이라는 단어이지만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환경 즉, 포도가 자라는 토양을 비롯해 기후 조건, 자연 조건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정성을 모두 포함한 단어로도 읽혀집니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된 후, 작은 한 병의 와인이라도 떼루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집에는 어떤 떼루아가 필요할까 항상 고민해봅니다.

좋은 와인의 조건처럼 집이 들어설 토지를 비롯해 기후 조건, 자연 조건 그리고 건축인들의 정성이 모두 어우러져야 비로소 좋은 집이 완성될 수 있을 겁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건축에 힘쓰는 모든 건축인 분들께서도 좋은 떼루아를 만들어 가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또한 와인은 시간을 들여 잘 숙성되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낸다고 합니다. 목조건축의 진짜 맛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리를 잡아가는 살아 숨 쉬는 집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와인과 건축 그리고 떼루아, 꽤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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