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에서 더 큰 개념의 공간을 만나다

'오월의 푸른 하늘' 책방지기가 전하는 건축 이야기 - 문학 속의 집을 여행하다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에서

더 큰 개념의 공간을 만나다.

글.사진제공 | 오월의 푸른하늘 대표 최린

 

미국 샌디에고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살다 온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함께 놀면서도 미국에 살던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엔 신기하게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친구의 눈동자는 점점 즐거움에서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나라도 더 들어주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랜 시간을 그 친구와 함께 했지만 친구는 결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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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는 파독 간호사 출신 할머니의 옛사랑을 찾아 떠나는 과거로부터의 시간 여행이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잔잔한 세레나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장통과 함께 찾아온 어린 시절의 독일 생활과 수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제가 주의 깊게 봤던 부분은 바로 공간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인물의 심적 변화였습니다.

독일로 넘어가게 된 주인공은 마음을 닫고 거짓말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자신을 스스로 ‘괜찮다’고 포장합니다.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만나게 된 한국인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그들이 소개해준 독일인들과 친해지면서 마음을 열고 독일을 자신이 살아갈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에 IMF사태로 인해 주인공의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 주인공은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오랜 방황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련한 독일에서의 추억과 못다 이룬 약속들이 주인공을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제 친구가 샌디에고를 그리워했던 이유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 풍경, 환대의 모든 것들이 친구에게 있어서 더 큰 개념의, 그가 가장 바랐던 공간이었던 겁니다. 더 좋은 집, 모국어를 쓰는 곳, 한국식 인간관계가 반드시 좋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맞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상 결정되어 있는 배경 안에서 최대한 사람에게 맞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건축의 길일 겁니다.

삶의 방식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살길 바랍니다. 미래의 건축은 문화를 이해하고 이용자에 맞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힘이 중요시 될 것입니다. 제 친구 또는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가장 한국적이지만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더 큰 개념의 건축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