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이고 부르기 전엔 보이질 않는다.

김 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처음에 이렇게 시작을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 짓고 불러 줄 때 명확하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미국과 일본의 주택건축에서 활용이 되는 물 관리의 원칙들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시가 생각이 났다. 우리와 차이가 있다. 그 사람들은 우리보단 좀 더 세분화되고 구체적인 단어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들의 건축에선 물 관리와 관련된 부분들이 구분되고 잘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엔 그런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 그나마 전문 공정이 구분이 되어 있는 건축산업기본법 28조의 하자담보기간에 대한 항목을 봐도 물에 관련된 항목은 방수라는 단 하나의 항목 밖엔 보이질 않는다. 우리나라 건축에서 물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방수 문제라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뭔가하고 있다. 하지만, 세분화되지 않고 이름 붙여지고 불러지지 않다보니 관심을 덜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한 문제들이 계속 줄어들지 않고 발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주택 건축에서 활용이 되는 물 관리 원칙들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분류하고 정의하고 사용을 해야만 한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고치고 개선을 할 수가 있는 법이다.


미국 주택건축에서 사용되는 용어,

물 관리층(water control layer)

미국의 주택건축 업계에선 물 처리와 관련된 용어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물 관리층이라는 말이다. 기후 관리층(weather control layer)라는 말도 함께 쓰였는데 이젠 점차 물관리층으로 통일이 되어가는 모양새이다. 빌딩사이언스코퍼레이션(BSC)의 죠셉 스티브룩 박사가 정리한 퍼펙트월 개념 덕분이다.

주택의 외피엔 기본적으로 네 가지 관리층이 있어야만 한다는 개념이다.

12. 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png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물 관리층이다. 이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집을 지을 때 무엇이 필요한지, 뭘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생각의 기준이 생긴다. 그런 생각의 기준이 중요한 법이다. 이 퍼펙트 월 개념에 대해선 그 동안 자주 언급을 해왔었기 때문에 이번 호에선 제외한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냥 그림을 보기만 해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도가 좋은 이유다.


일본 주택건축에 사용되는 용어,

우사무(雨仕舞,아마지마이)

일본의 주택건축 업계에선 우사무(雨仕舞,아사마지마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사무(아마지마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빗물이 침입하거나 새는 것을 막는 것 또는 그와 관련된 시공방법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정의만으로는 방수와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일본 빗물관리 분야의 1인자로 손꼽히는 일본 동해대의 이시카와 히로조 교수는 ‘사무’라는 말이 ‘끝’이나 ‘끝낸다.’는 의미 외에도 ‘처리한다.’는 의미가 있어서 ‘빗물처리’ 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우사무와 방수의 차이를 아래와 같이 설명을 한다.

우사무는 직접 비를 맞는 부분인 지붕과 외벽에 적용이 되는 말이지만, 방수는 특정 부위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방수는 기본적으로 불투수성 재료로 연속적인 면을 형성하여 물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수는 본질적으로 물을 모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법이므로 평지붕이나 욕실과 같은 곳엔 방수를 해서 물을 모아 배수구로 내보내는 형태로 사용이 된다.

방수층의 누수방지 성능은 오로지 방수재료의 연속성과 밀착성에 달려있어 시공관리가 중요하다. 또 사용되는 방수재료의 내구성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하기 위해선 유지보수의 반복이 필수적이다. 반면에 우사무는 빗물이 적시는 부위와 부재의 형태와 배치를 선택하여 빗물이 모이지 않도록 적절히 처리하는 일이다. 거기엔 빗물누수 방지뿐만 아니라 오염대책, 열화경감 방안 등이 포함이 된다.

시공은 방수와 같이 품질 관리가 어려운 기술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신뢰성이 높다. 부재의 형태와 배치가 변화하지 않는 한 같은 성능이 유지가 되기 때문에 장기간의 사용이 가능하고 최소한의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방수는 물을 가두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우사무는 물을 막고 배수를 하는 개념이다. 양쪽 모두 목표는 같지만, 우사무엔 적극적으로 배수를 시킴으로써 건물내부로 빗물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래의 그림이 둘의 차이를 가장 단순하지만 잘 설명을 하는 것 같다.

12. 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png

우사무는 역사적으로 볼 때 방수재료가 보급되기 훨씬 전부터 집을 지을 때면 해왔던 건축 재료의 형태나 재료의 배치 방법 등을 통해 빗물의 침입, 누수를 막는 시공 방법이나 구조 등을 말한다. 비가와도 물이 제대로 흘러 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장시간 물이 같은 장소에 체류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집을 비가 새거나 부후, 부식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때문에 우사무는 지붕뿐만 아니라 벽이나 창틀, 발코니 등 물이 침입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적용이 된다.

앞서 언급이 되었지만 우사무의 장점은

주로 사용되는 재료의 내구성이 좋기 때문에 장기간 같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수는 재료수명이 비교적 짧고, 빈번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예컨대 우사무는 시멘트 사이딩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서로 겹치는 형상을 만들어 놓으면 유지관리는 필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의 특성을 가진다.

방수와 차이가 나는 우사무의 또 하나의 장점은 습기관리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방수는 틈이 없기 때문에 건조에 애로사항이 있다. 특히나 목조 주택의 경우엔 방수된 부분에 물이 침투를 하면 건조가 어렵기 때문에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건조력의 확보 없이 방수만해선 오히려 집이 취약해질 수도 있다. 우사무는 그런 문제를 일으키질 않는다.

우사무라는 말을 번역을 하자면 물 처리, 빗물관리 등의 말이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비교해 설명을 하자면 다양한 방식으로 빗물 관리층을 만드는 것이 우사무이다. 미국은 개념적인 부분을 잘 정립했고, 일본은 세부적인 시공방식을 좀 더 강조를 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꼼꼼한 것은 누수도 또 구별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누수도 ‘비 누설’과 ‘빗물침입’으로 구분한다. 방안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얼룩이 발생한 것을 살고 있는 사람이 발견하는 것은 ‘비 누설’이다. 하지만, 거주자가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벽체 속이나 기둥, 합판 등에 빗물이 들어가는 것은 ‘빗물 침입’이 된다. 빗물 침입이 비 누설 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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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침입이 발생한 경우엔 건축 재료들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열화가 진행되고, 그로인해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 주택하자관련 책임을 묻는 품확법에서 ‘빗물침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빗물 침입’의 책임이 구조안전에 관여하고 나아가 내진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사무(아마지마이)의 핵심요소와 주요 시공 부분

우사무의 핵심 성공요소는 두 가지이다.

빗물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과

빗물이 나갈 길을 확보하는 것,

우사무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예측 가능한 또는 예측할 수 없었던 빗물의 추가적인 침입을 막고 밖으로 흘러나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야한다. 주택에선 주로 경사나 이음새가 있는 부분에 빗물이 고이거나 막히지 않고 흐르는 길을 만드는 일이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방향을 틀어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선 주로 세 가지 재료가 활용이 된다. 방수시트, 코킹재 그리고 후레싱이다. 물이 들어가지 말아야만 할 곳에 방수시트를 시공하고, 그 위에 후레싱을 설치해 물의 방향을 바깥쪽으로 유도를 하도록 하고, 그 틈새는 코킹을 하는 것이 기본적이 시공방식이다.

건물에서 우사무가 필요한 주된 부분,

즉 비가 새기 쉬운 곳은 미국에선 ‘트랜지션’이라고 불리는 부재끼리 서로 연결이 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2층 건물에서 1층의 지붕과 2층 외벽이 만나는 부분 같은 곳들 말이다. 외벽은 거의 수직이며, 그에 비해 지붕 등은 경사가 있기는 하지만 수평에 가까운 각도로 서로 만나고 있다. 외벽을 따라 내려온 빗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형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빗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구조가 있으면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선 빗물이 머무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빗물이 머물면 실내 쪽으로도 침입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가능한 부드럽게 빗물이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도록 궁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선 시공 상세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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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그런 부분은 물관리층을 만들어야만 하는 미국 쪽에서도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 부분인지라 역시나 관련된 시공 디테일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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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미국이나 일본처럼 시공을 하질 않는다.

그냥 아래와 같이 실리콘으로 그 틈새를 메꿔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 지나면 갈라지고 누수가 생길 수밖에는 없다.

아래 사진의 집도 저 갈라진 틈새로 물이 들어가서 누수가 발생을 했다. 지은 지 10년차 된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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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처럼 빗물관리에 필요한 것들을 세분화하고 이름 짓고 널리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전히 실리콘에만 의존하는 일들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름없는 것들은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